방탄소년단 멤버 민윤기(31)씨의 음주 운전 사건은 검찰의 약식 기소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벌금 1500만원. 재판까지 갈 만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복무요원 신분인 민씨는 지난달 만취 상태로 밤늦게 전동 스쿠터를 몰다가 길에서 혼자 자빠졌다. 의아하게 여긴 경찰이 조사했더니 혈중 알코올 농도 0.227%가 나왔다. 면허 취소 기준의 약 3배. 민씨로서는 재수 옴 붙은 날이었겠으나 천운이었다.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다.
무명 가수였던 방탄소년단을 지금의 위치로 밀어올린 건 그들이 노래로 지속 주창한 가치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에 대한 전 세계적 지지였다. 정신적으로 힘겨운 청년들에게 “너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자애(自愛)의 메시지는 기성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위로였기 때문이다. 자책은 접고 자기 자신에게 더 관대해지라는 격려, 그것은 곧잘 ‘선한 영향력’으로 번역됐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해진 나머지 청춘의 우상마저 결국 자해(自害)를 저질렀다. 몰락은 대개 이렇게 시작되곤 한다.
‘러브 유어셀프’는 아름다운 구호지만, 뉘앙스에 따라 냉소적인 경고가 될 수도 있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30)는 방탄소년단보다 앞서 ‘러브 유어셀프’라는 동명의 노래를 2015년 발표했다. 그 또한 전년도에 음주 운전으로 개망신을 당했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이 곡이 흥행하며 극적으로 재기하기는 했다). 제목만 보면 달콤한 사랑 노래 같지만 정반대다. 계속 그렇게 민폐 끼치며 살 거면 딴 데 가서 그냥 러브 유어셀프, 그러니까 “너 자신이나 실컷 사랑하라(You should go and love yourself)”는 내용이다.
어떤 가치의 유행은 반작용에서 온다. 세상이 팍팍하면 위로의 언어가 득세한다. 미국 명상 전문가 크리스틴 네프가 책 ‘러브 유어셀프’에서 밝혔듯 “개인적 성공에 가치를 둔 삶의 문화가 지닌 단점”에서 자기 연민은 타당성을 강화해왔다. 가혹한 경쟁과 그로 인한 낙오의 공포가 만연할 때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강력한 잠언이었다. 지난 몇 년 새 ‘나’는 이토록 중요해졌다. 동시에, 모든 상황에서 ‘러브 유어셀프’를 부르짖는 의도적 오독(誤讀) 역시 자행됐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애라는 방탄조끼를 껴입고 현실을 기만하는 자들이 늘었다. 이들의 폐해는 약식 기소로는 끝낼수 없는 중범죄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인생독본’에서 “자애는 교만의 시작”이라고 “교만은 자애의 억제가 곤란할 때 나타난다”고 했다. 자기애는 원초적 정념이고 긍정과 부정의 양가적 감정이다.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수록 누군가 다치기 때문이다. 여럿이 죽어나가도 그러나 누구도 자책하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 성찰은 사라졌다. 그저 스스로를 끔찍히 사랑할 뿐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격언은 고루한 조언이 됐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타락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필요하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러브 유어셀프’가 영원한 방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임의 언어가 방기된 사이, 방방곡곡에 금쪽이가 넘쳐난다. 이제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포옹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충고가 더 필요한 시대가 됐다. 무턱대고 사랑하기 전에, 최소한 누군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