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9일 춘천마라톤 참가자들이 강원도 춘천 공지천 출발선을 지나고 있다./남강호 기자

이달 말 열리는 춘천마라톤 취재를 준비하면서 참가자들이 보내온 출사표를 읽고 있다.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끊었다’ ‘포기했다’는 말이다. 담배를, 달콤한 아침잠을, 그렇게 좋아하던 술자리를, 퇴근 후 마음을 달래주던 국밥에 소주 한 잔을.

완주와 기록 단축이라는 원대한 목표에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걸 ‘끊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마라톤 대회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훈련량과 꾸준한 몸 관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루도 되는 대로, 편한 대로 설렁설렁 보낼 수가 없다. 최근엔 뭔가를 ‘끊었다’는 스포츠 선수들 얘기도 자주 들린다. 프로 10년 차인 올해 맹활약을 펼치며 최고 시즌을 보낸 프로야구 키움 28세 송성문은 올 시즌 개막 전 웨이트 트레이닝에 힘써 근육을 키우면서 평소 좋아하던 탄산음료를 끊었다. 튀김과 밀가루 섭취도 확 줄였다. 야구를 잘할 수 있다면 뭐라도 시도해 보겠다는 간절함,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가 컸다고 한다. “솔직히 작년까지는 먹고 싶은 걸 다 먹었다. 타구 스피드를 끌어올리려고 지난겨울 식단 조절을 시작했는데,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 걸 느낀다”고 했다.

지난 6일 한국프로골프 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31세 이수민은 4개월쯤 전부터 금연을 결심했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지 않기로 했고, 늦잠을 자는 대신 밤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30분씩 달렸다. 술과 탄산음료, 커피 등을 모조리 끊고 몸 관리와 훈련에 매진해 지난 5월 54세 최고령 기록으로 우승한 최경주 영향이었다.

오랜 부진에 시달려온 이수민은 최경주의 우승을 보면서 “(나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소한 것부터 고치자고 각오”를 다졌다. 최근 미PGA 시니어 투어에서 우승한 52세 양용은도 하루 16시간씩 간헐적 단식을 해오면서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한다. 장타에서 건강으로 지향점을 바꾼 31세 미국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는 밀가루와 유제품, 옥수수, 계란 등을 끊었다.

오래 익숙했던 생활 습관이나 좋아하던 음식을 하루아침에 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그 어려운 일을 기꺼이 시도하고 감수할 만큼 간절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이수민은 “골프가 잘 안 풀리다 보니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운동선수로서 기본적으로 지키고 관리해야 할 습관들을 갖기 위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기본 중의 기본으로 돌아가 프로로서 자세와 태도부터 점검했다. 음식을 먹고 몸에 나타나는 반응을 고등학생 때부터 기록해온 36세 프로골퍼 신지애도 자기 몸에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을 철저히 구분한다. 경기 이틀 전부터는 밀가루와 계란, 유제품, 날것을 입에 대지 않는다. “참는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내가 원하는 컨디션으로 골프를 하기 위해 선택한 것뿐이다. 선수이기 때문에 몸에 대해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송성문은 “식단 조절이 경기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건 확실하다”고 했다. “자신 있게 치다 보니 홈런 등 장타도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한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절제의 과정을 통해 자신감과 집중력을 얻었고, 이것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또 다른 힘이 됐다.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을 단호하게 끊었거나 끊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만큼 선명한 삶의 목표를 품고 치열하게 애쓰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승자요, 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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