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국내외에서 쏟아진 미국 대선 관련 보도를 대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던 장면이 있다. 방문연구원으로 한 해를 보낸 워싱턴DC에서 도시의 풍경을 보며 거기에 나타난 대통령제의 이상(理想)에 대해 생각하던 기억이다.
처음 가본 그 도시 한가운데에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있었다. 언덕을 기단 삼아 우뚝 선 그 건물을 한동안 백악관으로 알았다. 미국 수도의 도심 어디서나 눈에 띄는, 희고 크고 중요한 건물이니 당연히 백악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연방의회 의사당이었다. 워싱턴 DC는 수학의 좌표 평면처럼 직교하는 가로·세로축에 의해 행정구역상 사분면(四分面)으로 나뉘는데, 그 중심이 의사당이다. 이 도시의 주소에서 해당 지점이 어느 사분면에 속하는지 나타내는 NE(북동), NW(북서), SE(남동), SW(남서) 기호가 의사당 주소엔 없다. 원점이기 때문이다. 의회를 수도의 중심으로 삼은 그 풍경은 법치가 나라의 근간이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의사당과 2㎞쯤 거리를 두고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 조지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초대(初代)부터 이어 온 대통령제의 정신이 법치주의와 쌍벽을 이룬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워싱턴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절제(節制)였다. 사저 ‘마운트 버넌’ 웹사이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통령의 임기 제한이 없던 때였고 많은 사람이 종신 재임을 지지했지만 워싱턴은 두 번째 임기가 끝난 뒤 물러나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중요한 선례를 세웠다.” 오늘날 그가 좌우를 초월해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단지 첫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의사당에서 워싱턴 기념탑을 거쳐 링컨 기념관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약 3㎞ 구간이 수도의 중심축이자 국가 상징물이 밀집한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다. 백악관은 이 축에서 몇 블록 비켜난 곳에 있었다. 외곽을 경비하는 경찰들 곁을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그곳이 백악관이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았을 정도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일지라도 현직 대통령은 법과 전통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실무자일 따름이다. 초유의 선거 불복과 의회 습격으로 미국 정치의 사상적 토대를 흔든 장본인이 재등장한 무대가 이번 대선이었기에 기억 속 풍경이 새삼 생각났던 것 같다.
서울은 최근까지 정반대였다. 법치의 중심인 국회는 섬에 격리되고 대통령의 공간이 도시의 중심을 차지했다. 왕조시대 궁궐 터였던 그 자리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나라님 못지않게 제왕적이었다. 2022년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이전하고 청와대를 개방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의 대통령제가 드디어 구중궁궐을 벗어난다는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청와대를 떠난다는 측면이 부각된 데 비해 ‘왜 용산인가’에 대한 공감대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를 1순위로 검토하다가 경호·비용·보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용산으로 결정됐다는 보도를 보면서 내막을 짐작할 뿐이다.
어디서든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의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수도는 그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간적으로 드러낸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할 때 참모진·언론과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백악관을 벤치마킹했다지만, 도시라는 맥락에서 보면 백악관과 용산 대통령실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세계의 질서를 이끌어 갈 미국 새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에 워싱턴 DC와 서울의 풍경을 떠올린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이 정권이 대통령실을 이전한 초심(初心)은 무엇이었는지, ‘용산 대통령실’에 담긴 대한민국의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상(像)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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