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라노 헤소 마쓰리(Hokkai Heso Matsuri·배꼽 축제). /일본 후라노 관광청 페이스북

삿포로에서의 1년은 제법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며 단지 더운 게 싫다는 이유로 일본 열도 최북단 홋카이도에 있는 삿포로를 택한 것이었지만, 그 1년 동안 홋카이도의 매력에 푹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과 농업이 주요 산업인 홋카이도에서는 크고 작은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대자연의 은혜로 먹고사는 홋카이도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땅과 바다에 감사하고 일상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보겠나 하는 생각에 삿포로 인근 소도시들의 마쓰리(축제)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지역은 후라노시(市)다. 삿포로에서 기차로 족히 3시간은 가야 하는 후라노는 인구 2만의 작은 도시다. 관광객들에게는 드넓은 라벤더밭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후라노의 진짜 매력은 헤소 마쓰리(배꼽 축제)에 있다. 후라노시는 스스로를 ‘홋카이도의 배꼽’이라 칭한다. 홋카이도 정중앙에 있기 때문이다. 배꼽이라는 축제 콘셉트도 여기에 착안했다. 헤소 마쓰리 참가자들은 상의를 들추고 익살스러운 그림이 그려진 배를 드러낸 채 시가지를 행진한다. 수천 명이 자신의 배를 내놓고 음악에 맞춰 행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 ‘배꼽의 행렬’을 보려고 인구 2만 소도시에 매년 관광객 7만여 명이 몰린다.

헤소 마쓰리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인파의 구성이었다. 백발의 노인부터 초등학교도 안 갔을 법한 꼬마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기 고장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후라노 시민들은 동네 이웃, 회사 동료, 학교 동창들과 팀을 이뤄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그들에게는 준비 과정부터가 지역 이웃과 함께하는 축제인 셈이다. 삿포로에 사는 일본인 친구들도 어린 시절 부모님, 동네 어른들과 눈 축제에 참가해 눈 조각상을 만들었던 사실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역 공동체는 그렇게 축제를 거치며 단단해졌다.

지역 축제라 하면 우리도 빠지지 않는다. 올해 열렸거나 열릴 지역 축제는 1,170건. 지방자치제도가 막 시작된 1996년 412건에 비하면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지역 축제는 지역 소멸 시대에 조금이라도 지역을 알리고 관광객을 모으려는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정부도 최근 내년도 보통교부세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지역 행사나 축제에 예산을 많이 쓰면 다음 해 교부세를 깎던 벌칙 규정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아마 많은 지자체가 벌써부터 ‘제2의 김천 김밥 축제’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축제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성공의 개념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 연예인 불러서 사람 많이 모으고 먹거리 잘 팔아 매출만 많이 올리면 성공한 축제일까. 물론 이마저도 제대로 못 하는 데가 태반이지만, 지역의 정체성이라곤 조금도 담기지 않고 주민들도 뒷전으로 밀린 축제들이 지역의 장기적 경쟁력 확보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모르겠다. 김밥 축제, 라면 축제가 성공했으니 조만간 이를 모방한 떡볶이 축제, 튀김 축제도 등장할 거란 농담이 기우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그런 양산형 축제의 흥행보다 비록 작더라도 지역 공동체 결속에 이바지하는 축제의 존재가 훨씬 중요하다.

올해로 56회째인 헤소 마쓰리도 처음엔 참가자를 모으지 못해 겨우 11명이 퍼레이드를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틀간 4,000여 명이 참가하는 홋카이도 대표 축제가 되었다. 시작이 조금 초라하면 어떤가. 그 순간만이라도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지역 축제가 경제적 성과를 좇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단 며칠이라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 애착을 갖고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장으로 기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