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거주 중인 66개국 외국인들이 지난 10월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연세대학교 언어연구교육원 한국어학당에서 열린 제30회 외국인 한글백일장에 참여해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뉴스1

필사가 유행이고 필사책이 인기라는 며칠 전 본지 기사를 보면서 생각했다. 가성비와 효율이 시대정신이나 마찬가지인 요즘 세상에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유행이구나. 필사책 판매량이 전년보다 2.6배 늘었고, 올해 한강 작가 작품을 제외한 최고 베스트셀러도 필사책이었다고 한다. 필사 모임을 만들고, 필사 인증샷을 올리고, 필사 방법을 영상으로 찍어 공유한다. 필기구 등 문구류 판매량까지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문해력·어휘력 등을 키울 목적으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에게 한글 또는 영어로 된 문단 하나 정도를 꾸준히 필사하게 하는 사례를 주변에서도 여럿 봤다. 오장육부가 아니라 오장칠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온종일 휴대폰을 눈과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어른들에겐 핸드폰 대신 펜을 쥐어보는 시간 자체가 휴식일 것이다. 글을 다루는 것이 멋있고 개성 있다는 의미의 ‘텍스트힙(text-hip)’이 유행이라는데, 역설적으로 글을 읽고 쓰는 일이 그만큼 드물어졌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일이 새삼 유행이 되거나 특별히 멋있게 여겨지지는 않을 테니까.

직업상 글을 쓰는 형식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이들에게 필사는 오랫동안 가장 대표적이고 고전적인 시험 대비 방법으로 꼽혀왔다. 꾸준히 제대로 실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나 역시 입사 전엔 두어 번 해 보다가 그만뒀다. 시간은 터무니없이 많이 걸리는데 효과는 측정 불가하거나 미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헬스장 러닝머신처럼 지루했다.

진지하게 필사를 시도하게 된 건 입사 직후였다. 매일 짧은 시간 안에 품질이 어느 정도 확보된 원고를 생산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고 거의 불가능했다. 마음은 다급한데 좀처럼 빨리 몸에 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벼운 이유로 며칠 입원을 하게 되자, 그때가 필사를 시도해 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스트레이트 기사, 기획 기사, 인터뷰, 짧은 칼럼 같은 것들을 노트에 무작정 베껴 나갔다. 그거 말곤 달리 할 일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필사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필사는 글쓴이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 잠시나마 글쓴이가 되어 보는 경험이었다. 그러고 나면 짐작할 수 있었다. 글쓴이가 이 주제를 가지고 왜 이런 순서로 글감을 배열했는지, 왜 이 정도 강도의 표현을 골라 굳이 이 자리에 이런 식으로 두었는지, 어떤 정보는 포함했고 어떤 정보는 제외했는지….

어쩌면 글쓴이는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했겠고, 여기쯤에선 숨을 한 번 참았겠구나. 그러니까 필사는 글의 리듬과 맥락을 놓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의 독서였다.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의 읽기였다. 적어도 내 경우에 필사는 글솜씨를 드라마틱하게 향상시켜 주거나, 글로 인한 고민과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는 수단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생각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최대한 늦추는 훈련,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리게 생각해 보면서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 나아가 구조 전체를 더듬더듬 짚어 보고 뜯어볼 기회였다.

온 국민 마음에 충격과 상처로 남을 2024년을 보내면서 필사하고 싶은 글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전문이다. 그의 평생을 관통해 온 견고한 질문들을 가능한 한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며 고요해지고 싶다. 그 고요가 주는 힘으로 이 긴긴 불안과 혼돈의 겨울을 살아나갈 것이다.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속보가 쏟아지는 세상에 2배속, 3배속도 좋고 재미도, 효율도 좋지만, 아주 느려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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