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학에 입학하고 맞닥뜨린 가장 큰 난관은 등록금이었다. 한 학기에 320만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가장학금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최저시급 3770원짜리 아르바이트로 그 돈을 충당한다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은행에서 연 6% 정도 되는 이자로 대출받아 등록금을 냈다. 5년 선배가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200만원대 초반이었는데 그사이 어떻게 이렇게 오르느냐”며 혀를 내두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 학교만 그랬던 게 아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사립대 평균 등록금 인상률은 63.5%, 국공립대는 무려 90.1%에 달했다.
2000년대 대학 등록금은 왜 그렇게 가파르게 상승했나. 당시 대학에 진학한 1980년~1990년대 초반생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다.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 공식이란 게 존재했고, 그 자녀들은 부모의 성공 공식을 물려받았다. 당연히 대학에 가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었다. ‘에코 세대’라는 명칭답게 인구수도 많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매년 70만명 이상이 태어났다. 그렇게 N수생 포함 한 해 60만명 안팎이 수능에 응시했다. 사람 수가 많은데 대학 진학 수요도 높았으니 각 대학이 배짱 장사하듯 등록금을 올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해마다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학생들을 지원하는 한편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등록금 인상률이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2012년부터는 등록금을 동결‧인하하거나 교내 장학금을 유지·확충하는 학교에만 국가장학금(Ⅱ 유형)을 지원했다. 사실상 등록금을 올리지 말라는 거였다.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에 정부가 나서서 제동을 걸었던 건 적절했다고 본다. 하지만 뭐든 과유불급인 법이다. 강한 규제로 15년 이상 흐른 지금도 대학 등록금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 최저시급은 3배 가까이로 올랐다. 지난 3일 서강대학교가 13년 만의 등록금 인상을 발표한 건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서강대 관계자는 “학교 시설이 초‧중‧고등학교만도 못해 학생들에게 초라한 느낌을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어디 시설뿐인가. 2010년대 대학들은 등록금 부족분을 메우려고 외국인 유학생을 대거 유치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유학생들을 우리나라 학생들과 한데 묶어놓았다. 조별 과제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졌다. 2030 세대의 강한 반중 정서는 그 경험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등록금 정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AI 분야 연구 인력을 죄다 미국으로 빼앗기고 있는 유럽 대학들의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초중고만도 못한 시설”로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하는 건 불가능하다. 등록금 인상을 허용할 때 일어날 반발이 두렵다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려서라도 억누르는 게 과연 학생들을 위한 건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도 2023년 12월, 등록금 동결이 시작된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1년간 사립대학의 연구비(-18.0%), 실험 실습비(-26.1%), 도서 구입비(-25.5%) 등이 대폭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청년들이 등록금 인상에 분노하는 근원에는 대졸자와 고졸자 간 극심한 임금 격차가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으려면 대학 진학이 필수이니 다들 등록금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학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일자리 격차를 줄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지, 불만 누그러뜨리자고 그저 등록금 인상을 통제하고 국가장학금으로 달래는 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