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중국의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톈궁 울트라’가 21.0975㎞를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40분 42초였다. 일반적인 아마추어 하프마라톤 대회의 제한 시간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이니, 이 기준을 적용하면 실격이거나 실격을 겨우 면한 수준이다. 그러나 제법 안정적인 자세로 달리는 톈궁 울트라를 보면서 기록 단축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아직은 무리인 줄 알았던 실제 대회 완주를 어느새 가능케 한 것처럼, 기술은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톈궁 울트라를 중국 아닌 한국에서 만들었더라도 마냥 경탄할 수만은 없었을 것 같다. 로봇이 곧 인간을 압도하리라는 느낌 때문이다. 불길한 그 느낌은 생김새와도 관련이 있다. 톈궁 울트라는 ‘불쾌한 골짜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을 닮은 대상일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어딘가 이질감은 있지만 상당히 비슷한’ 단계에 이르면 상승하던 호감도 곡선이 골짜기처럼 급격히 하강한다는 속설. 마징가 제트였다면 인형탈 쓰고 달리는 코스프레 러너처럼 유쾌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톈궁 울트라는 싱글렛(육상용 민소매 상의)을 입고 러닝화를 신었다. 전날 밤 레디샷(경기 출전 복장을 늘어놓고 찍는 사진)도 찍었을 것만 같다. 인간 마라토너들이 대회를 앞두고 하는 것처럼.
이제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포츠용 GPS(위성 항법 장치) 시계로 기록한 지난 여섯 달의 달리기를 돌아봤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번 주까지 74번에 걸쳐 796.84km를 달린 것으로 나와 있었다. 총 68시간 14분 42초가 걸렸다. 거리, 시간, 평균 페이스, 심박수, 보폭과 케이던스(1분당 걸음 수)를 나타내는 건조한 숫자 속에 겨우내 나태해졌다가 봄 대회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던 날들이 있다. 장갑을 껴도 추위에 떨어져 나갈 듯했던 손가락의 감각, 마일리지(누적 주행거리)를 늘려야 한다는 조바심에 집에서 회사까지 36㎞를 뛰어서 출근했던 날의 근육통도 다 남아 있다.
이것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누군가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잘 달린 결과물이라서가 아니다. 2025년 이 무렵의 내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살았다는 징표이기에 의미가 있다. ‘딥시크’ 같은 AI(인공지능) 모델까지 로봇에 탑재되면 달리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도 술술 읊게 되겠지만,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는 날이 와도 톈궁 울트라는 그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로봇 마라톤 대회의 진짜 메시지는 인간이 곧 무용(無用)해진다는 게 아니다. ‘사람 같은’ 로봇의 시대에도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이 있다. 이번에 톈궁 울트라는 길 가운데에 울타리를 쳐서 일반 인간 참가자와 분리한 주로(走路)를 달렸다. 군중 속에서 장애물을 피해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개선되면 그 울타리는 사라지겠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성취를 위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서울하프마라톤이 열리는 날이다. 아마추어 러너의 비교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라고 한다. 지난 대회 기록은 1시간 28분 50초, 훈련 분석 프로그램이 그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한 이번 대회 기록은 1시간 27분 15초다. 이 예측이 상당히 믿을 만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예측대로 더 좋은 기록이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PB(개인 최고 기록)가 나온다고 너무 우쭐하지 말고 안 나온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도 말자고 다짐할 뿐이다. 봄 대회가 마무리되면 가을 춘천마라톤까지 이어지는 여름 시즌이 다시 시작된다. 그렇게 달리기는 계속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