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서 미술 창작을 하거나 디자인 활동을 전개하다 보면,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 근원적 질문과 과제가 있다. 바로 한국성·한국색의 핵심을 추구하고 구현하는 일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이냐’를 묻고 답하다 보면, 결국 정체성 논쟁이 야기되는 법이기에, 여차하면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K팝이나 한류의 성공 덕분에 문화적 순혈주의에 대한 환상은 크게 퇴색하고, 그래도 문화적 혼성성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성·한국색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나 합의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실험을 추구하는 현대미술계와 디자인계에서조차 이민자 한국인의 존재와 문화를 새로운 한국성·한국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하면, 한국성·한국색 담론은 어디에서 출발해 오늘에 이르고 있을까? 주요 남상(濫觴·사물의 처음이나 기원)점 가운데 하나는, 식민 조선에서 전개됐던 조선미론 혹은 조선미술논쟁이다.
1928~1931년 시기 식민 조선에서 조선미(술)론이 전개된 배경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본색이나 중국색과 구별되는 조선색을 규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심영섭·김용준·오지호는 자율성을 추구하는 순수미술론의 입장에서 조선 향토색을 논했고, 홍득순·윤희순은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미술론의 입장에서 조선 향토색을 논했다.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이 조선총독부 주관의 조선미술전람회가 권장했던 ‘조선 향토색’이었다.
조선미술전람회의 일본인 심사위원들이 조선의 향토색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931년부터였다. 1934년 야마모토 가나에(山本鼎)는 “조선의 자연과 인사 향토색을 선명하게 표출한 작품을 기준으로 심사하는 것”이라고 했고, 1935년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는 “조선 특유의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것이 훌륭한 점으로 이런 입장을 중시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했다. 1939년 야자와 겐게쓰(矢澤弦月)는 아예 다음과 같은 명확한 심사 기준을 제시했다:
①반도의 오랜 전통을 묵수(墨守)하면서 진경을 보인 것.
②정확한 자연 관조와 자유롭고도 순진 청신한 표현 수법으로 제작한 것.
③특색 있는 색채와 중후한 기교가 그야말로 반도적인 것.
원론적 차원을 맴돌던 조선 향토색 담론을 추상적 차원에서 종합해낸 주인공은, 개성부립박물관장 고유섭(高裕燮·1905~1944)이었다. 그는 1940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글 ‘조선미술문화의 몇낱 성격’과 1941년 ‘춘추’에 기고한 글 ‘조선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 문제’에서,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성’ ‘구수한 큰 맛’ ‘고수한(구수한의 사투리) 작은 맛’과 같은 언어로 조선미술의 특질을 규정하고자 했다.
고유섭에 따르면, 고대 한반도인과 조선인·한국인의 조형이나 미의식을 공히 특징짓는 미감 혹은 감각이, ‘구수한 큰 맛’이다. 단아하지만 존재감 면에서 작지 않다는 양의적 모순을 강조하는 것이 ‘큰 맛’이다. (보통 단아하려면 미분된 감관, 즉 작은 맛이 발달해야 한다.) 반면 ‘구수한’이라는 수사는, 정제·분화되지 않은 원시적 미감의 세계를 괄호 치는 장치다.
‘구수한 큰 맛’과 ‘고수한 작은 맛’을, 전문가의 언어가 아닌 입말로 고쳐 풀어보면, 변방답게 세련미가 부족하고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꽤 호방하고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데 정감까지 넘쳐서 썩 괜찮다는 뜻이 된다.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성’ 또한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식민지 지식인이 현대인의 내면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낯선 타자로서의 조선의 예술을 재대면하고, 그를 긍정하는 미학화 과정으로 자신을 구미나 일본의 지식인과는 다른 ‘현대 조선인’으로 업데이트해내는, 차이화 전략의 하나였다.
‘구수한 큰 맛’을 가장 잘 구현한 현대미술가가 누구일까 따져보면 이응노, 김환기, 유영국 등을 먼저 논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돌고 돌다보면 결국 백남준을 꼽게 된다. 민중미술을 ‘구수한 큰 맛’으로 평가하자면, 단연 으뜸은 오윤이다. 동시대 예술가로 눈길을 돌려도, 박모(본명 박철호), 최정화, 안은미 등은 신기할 정도로 ‘구수한 큰 맛’에 딱 부합한다.
K팝과 한류의 성공도 ‘구수한 큰 맛’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BTS)의 RM(김남준)이 세계 각지에 산개한 ‘아미’와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면, ‘구수한 큰 맛’이 소외된 청소년·청년층을 아우르는 쌍방향·다층 구조의 소통으로 전화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 한국인의 미감 혹은 미의식이 ‘구수한 큰 맛’이라는 양의적 모순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국성·한국색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면?
‘무기교의 기교’나 ‘무계획의 계획’이 아니라, ‘다기교의 기묘한 조화’와 ‘계획의 유기적 변화와 적용’으로 21세기 한국성·한국색의 특질을 설명해야 옳지 않을까?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추구하는 ‘화끈하고 다채로운 큰 맛’이, 미래지향적 한국성·한국색의 참모습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