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27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모차르트의 미발표 곡을 초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날은 모차르트의 265번째 생일이었다. 또한 그날은 모차르트 ‘알레그로 D장조’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의 예술인 ‘음악’은 그것을 연주하고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알레그로 D장조’를 작곡한 때가 1773년이었으니 이 곡은 거의 250년이 지나 조성진에 의해 생명을 얻은 셈이다.
오늘날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되는 클래식 명곡 가운데는 초연이 늦어지는 바람에 뒤늦게 생명을 얻은 곡들이 있다. 흔히 ‘그레이트 교향곡’이라 불리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교향곡 C장조가 대표적이다. 교향곡 역사상 위대한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곡은 슈만과 멘델스존이 아니었다면 영영 잊힐 뻔했다. 사실 슈베르트의 ‘그레이트 교향곡’은 슈베르트 생전에 초연될 뻔한 적이 있기는 했으나 곡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초연이 거부되었고, 슈베르트 사후 1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이 작품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슈베르트 사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슈베르트 ‘그레이트 교향곡’의 악보를 발견한 슈만은 이토록 위대한 작품이 여태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형식의 웅대함과 독특한 악상을 담은 그 곡은 베토벤 교향곡 이후 최고 수준의 교향곡이라고 할 만했다. 슈만은 당장 이 위대한 교향곡을 완전하게 초연해야 한다고 페르디난트를 설득하고는 당장 브라이트코프 & 헤르텔 악보 출판사와 접촉하여 슈베르트의 ‘그레이트 교향곡’ 악보를 출판했다. 그리고 지휘자 멘델스존은 1839년 3월 21일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C장조 ‘그레이트’ 전곡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했다. 거의 한 시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연주 시간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 ‘그레이트 교향곡’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초연이 성공했음에도 슈베르트 ‘그레이트 교향곡’이 사람들의 이해를 받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 어마어마한 길이와 난해한 연주법이 문제였다. 1839년 12월 15일에 빈에서 이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에도 단지 두 악장만 연주되었고, 청중의 지루함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두 악장 사이에 도니체티의 오페라 아리아가 삽입되기도 했다. 이 곡의 런던 공연 당시 이 곡을 연습하던 연주자들은 똑같은 리듬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4악장에서 폭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연습이 엉망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던 슈만은 계속해서 슈베르트 ‘그레이트 교향곡’에 대한 글을 쓰며 이 곡의 훌륭함을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1840년 발간된 음악신보에서 슈만은 이렇게 썼다.
“이 교향곡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슈베르트를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이 교향곡에는 음악이 표현해왔던 아름다운 노래와 고통과 기쁨을 능가하는 그 무엇이 있다.”
슈만의 노력 덕분인지 오늘날 슈베르트의 ‘그레이트 교향곡’이 음악 역사상 매우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들과 오케스트라들은 이 교향곡을 즐겨 연주하며 음악 애호가들은 그 웅대함과 심오함에 감탄하고 있다.
만일 슈베르트 ‘그레이트 교향곡’의 초연에 힘쓴 슈만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슈베르트의 이 위대한 교향곡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조성진이 모차르트의 미발표 곡 ‘알레그로 D장조’를 초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차르트가 남긴 또 하나의 보물 같은 곡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성진의 모차르트 초연의 의미는 남다르다. 다만 조성진의 공연이 코로나로 인해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청중’은 ‘연주자’와 더불어 음악 작품에 생명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의 열기가 연주자에게 에너지를 전할 때 비로소 음표들은 더욱 생기를 얻는다. 이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조성진의 모차르트 연주를 세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청중의 열기와 에너지로 가득한 콘서트홀이 그립다. 수천 명의 관객이 피아니스트의 손끝을 주시하며 그 음 하나하나에 전율하고 감동하는 그 순간이 진정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