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인가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윗집 아저씨가 음료수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우리 손주가 외국에 있다가 방학이라 왔는데, 얘가 좀 많이 뛰어요. 시끄러워도 좀 양해를…..” 말을 끊다시피 하며 아유 괜찮습니다, 애들이 다 그렇죠 뭐,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그분이 주신 홍삼 음료수를 한 병 따서 마시려는데 윗집에서 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며칠째 났던 소리였을 텐데 실제로 들린 건 처음이었다. 층간소음의 세계에서 이런 현상을 ‘귀가 트인다’고 한다. 평소 들리지 않던 소리가 갑자기 들리면서 신경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귀를 틔워준 윗집 아저씨가 약간 원망스러워졌다. 방학 끝나면 조용해지겠지 했는데 곧바로 코로나가 터졌다. 윗집 손주는 요즘도 뛴다. 불평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층간소음 보복 사례 중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수능 전날 잠을 설쳤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평소 윗층 꼬마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시달리던 이 사람은 수능시험 전날 윗집에 찾아가 “내일이 수능이니 오늘만 참아달라”고 했다. 윗집에서는 “내일 우리 아이 피아노 콩쿠르다”며 거절했다. 결국 잠을 설친 이 사람은 윗집 아이가 고3이 될 때까지 10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해 수능 전날, 자신의 집에서 밤새도록 기타를 쳤다. 참다 못한 윗집에서 찾아왔을 때 “내일 기타 콩쿠르가 있어 연습 중”이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층간소음 보복 방법으로는 막대기로 천장 두들기기, 우퍼를 천장에 매달아 헤비메탈 음악 틀기, 모기향이나 담배 연기를 화장실 환풍구로 피워 올리기 같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들었다. 친구 한 명은 남매가 어렸을 때 아랫집 사람이 베란다에서 수도 호스로 위층 자신의 집 거실에 물을 쏘아대고 유치원 가는 남매를 붙들고 다그치기도 했다고 한다.

층간소음 때문에 느닷없이 유명해진 음악이 있으니 바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괴작(怪作) ‘미궁’이다. 한밤중 윗집을 향해 이 음악을 틀었더니 다음 날 층간소음 문제가 해결됐다는 둥, 윗집에서 무당을 불러다가 귀신 쫓는 굿을 했다는 둥 층간소음계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1975년 초연된 ‘미궁’은 제목이 말해주듯 시작부터 끝까지 혼란스럽고 기괴하며 빠져나가고 싶어 발버둥치게 만드는 음악이다. 46년 전 가야금으로 이런 전위음악을 만들었다니 새삼 황병기라는 세계적 음악가를 존경하게 된다.

황병기 제3작품집 미궁 / Google arts & culture

가야금의 가장 낮은 현을 바이올린 활로 두들기며 음악이 시작된다.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일렉트릭 기타를 활로 켜며 ‘Dazed and Confused’란 곡을 연주한 것이 1970년대 초였다. 황병기의 음악 스펙트럼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윽고 어떤 여자가(초연에서는 무용가 홍신자가 맡았다) 우우우, 하고 허밍을 하는데 여자인지 남자인지 심지어 사람의 소리인지도 불분명하다. 톱으로 연주하는 듯한 소리를 내던 여자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가 점점 울음 소리로 바뀌어 소리지른다. 왜 이 음악을 들은 집에서 굿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음악은 여자가 “하얀 와이셔츠에 가지런한 넥타이를 맨…” 어쩌고 하며 신문 기사를 읽기 시작하면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여자의 내레이션은 곧 광인(狂人)의 아무 뜻 없는 울부짖음으로 바뀌고 칠흑의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발목을 잡힌 사람처럼 비명이 된다. 18분이나 지속되는 음악은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인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반복하다가 끝난다.

웬만한 음악 애호가가 아니면 이 곡을 끝까지 듣지 못할 것이며, ‘미궁’의 미학적 가치를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처음 본 마티스는 “대체 뭘 그린 건가.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라고 말했고, 소변기에 사인을 해서 작품이라고 내놓았던 뒤샹도 전시를 거부당했었다. 국악에서 황병기는 피카소와 뒤샹 못지않은 개척자였다.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미궁’이 층간소음 보복 음악으로라도 알려지는 게 기쁜 이유다.

며칠 전 늦은 밤 TV로 영화를 보는데 아랫집에서 인터폰이 왔다. 한밤중 음악 소리가 너무 큰 것 아니냐는 불평이었다. 누가 뛴 것도 아니고 피아노를 친 것도 아닌데 그럼 밤에 TV도 못 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사과하고 TV 볼륨을 줄였다. 나 역시 황병기의 ‘미궁’을 즐겨 듣지도 않을뿐더러 아랫집 천장을 뚫고 들리는 ‘미궁’은 정말 끔찍할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