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것과 누구에게나 넘쳐날 만큼의 지상의 빵은 양립할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대작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대심문관이 예수에게 하는 말이다. 종교재판이 횡행하던 16세기 스페인에 예수가 재림하자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치유의 기적을 간청한다. 눈먼 자가 눈 뜨고 죽은 아이가 되살아나는데, 그때 대심문관인 추기경이 나타나 예수를 체포하고 화형에 처하고자 한다. 죽이려는 이유는 이렇다. 대다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지상의 빵’이지 ‘천상의 빵’이 아니며, 예수가 가르친 영혼의 자유(선악을 선택할 자유의지)는 양심의 고통만 더해줄 뿐이다. 인간은 무력하고 비열한 족속이므로 차라리 노예 상태에 남겨진 채 단순한 물질적 만족만을 보장받는 편이 낫다. 그러니 인간 사회를 “공통의 조화로운 개미집”으로 만들어 모두가 복종하고, 노동하고, 어린애처럼 행복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자신의 웅대한 기획에서 방해꾼 예수는 제거되어 마땅하다.

/일러스트=이철원

‘Pro(찬)와 Contra(반)’라 제목 붙은 이 장면은 작품의 핵심 대목이자 작가가 줄곧 골몰해온 사상의 요약본으로 손꼽힌다. 읽기 재미있거나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통독하고 나면 뭔가 또 다른 차원에 들어선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소설 속 대심문관조차도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에 있다”고 인정하는 바, 바로 그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수는, 다행히도, 화형에 처해지지 않는다. 대심문관이 반항의 논증을 마친 후 예수가 제시한 행동의 화답은 단 하나, 상대의 메마르고 핏기 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 맞추는 것이다. 그러자 몸을 부르르 떤 늙은 대심문관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며 예수를 풀어준다. “입맞춤은 노인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이념을 고수한다”고 도스토옙스키는 썼다. 기독교적 사랑의 믿음과 반기독교적 이념의 대립은 이후로도 계속될 것이다.

두 번째 아내의 내조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말년을 제외하면,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빈곤했다. 페테르부르크 기념관에 생전의 집 배치가 보존되어 있는데, 작가 책상에는 성경책과 찻잔이, 아내 책상에는 주판과 가계부가 놓인 것이 인상적이다. 줄줄이 딸린 가족을 부양하고,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원고를 써야만 했던 이 프롤레타리아적 작가는 동시대 귀족 작가인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여유를 부러워하면서도, 원칙적으로 부르주아 정신을 혐오했다. 그는 ‘학대받고 모욕당한’ ‘가난한 사람들’(모두 그의 작품 제목이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물론 분노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는 반대했다.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진보주의 사상 서클에 관여했으며 그 때문에 4년간 시베리아 유형을 산 전력에도 불구하고,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유행하던 공상적 사회주의 유토피아론을 일축했다. 혁명을 꾀하는 급진주의자들도 신랄하게 조롱했다. 왜? 한마디로 ‘천상의 빵’이 ‘지상의 빵’에 우선했기 때문이다. 강제적 평준화와 비인격화를 수반한 전체주의 제도보다 개인 정신의 자유가 그에게는 중요했다. 기나긴 “회의의 용광로”를 통해, 즉 신이 인간에게 허락해준 자유의 고통을 충분히 거친 끝에 내린 최종 선택이었다.

“돈이 전부다!”를 외치면서 “내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라며 저항하는 소설 ‘도박사’의 주인공처럼, 도스토옙스키는 빵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빵의 노예로 남기를 거부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대심문관은 그가 끝내 부정한 유물론적 세계관의 표상이다. ‘악령’에서는 조직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혁명가의 말로를 그린다. “무한한 자유에서 출발해 무한한 전제로 끝날 수밖에 없는” 혁명의 아이러니를 그는 예고했다. “혁명을 만들고 있는 정신의 허위와 부정을 그보다 더 격렬하게 비난한 사람도 없다”고 철학자 베르댜예프는 평한다. 레닌이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쓰레기 취급하고, 과거 소련과 중국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칭송받지 못한 까닭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민중 혁명을 믿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신앙은 ‘서로 사랑하라’ ‘고통을 나누라’는 인류애의 근본을 역설했다. “평등은 오직 인간의 정신적 존엄성 안에 깃들며, () 서로 형제가 된다면 박애도 생겨날 테지만, 박애가 있기 전에는 분배란 불가능할 것이다.” 소설에서 대심문관의 대척점에 선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제도의 선함이 아니라 민중의 선함을 믿고자 했다. 인간이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