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은이의 시각이 아닌, 각종 커뮤니티 게시글, 언론 기사 댓글들의 내용 등을 토대로 재편성한 풍자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나는 대깨문이다. 내가 언제부터 대깨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본디 나는 귀가 얇고 심장이 약해 길거리에서도 온갖 종교인들에게 끌려갔다가 겨우 빠져나오길 반복했는데, 이만한 종교가 따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니 사실 잘된 일이기도 하다.
한때 이런 글이 떠돈 적이 있다. 이른바 ‘대깨문의 일기’라 불리는 이 글은 짧고도 명쾌하게 대깨문의 실상을 까발리므로 심장이 꽤나 아픈 것이다. 먼저 읽어보도록 하자.
‘서울 서대문구에서 전세를 살던 대깨문 김모씨는 종부세 인상 뉴스에 투기꾼 놈들 잘됐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5개월 후 전셋집 재계약 날 월세 200만원을 내라는 집주인 말에 영문도 모르고 경기도로 쫓겨나게 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빨간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그의 이어폰에선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흐르고 있다.’
마치 대깨문의 일상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듯, 뛰어난 묘사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 글은 한 가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속에 저자의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 글을 통해 저자 내면에 형상화된 빈자의 단편적 모습을 정치와 결부시킴으로써, 진보적 세계관의 허구성을 까발리려는 심보겠다. 그러나 그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부자다.
내가 사는 서울의 아파트는 얼마 전, 20억원을 가뿐히 돌파하고 말았다. 해놓은 짓이라고는 지난 총선 이후, ‘민주당이 득세했으니 집값이 더 오를 것이여. 자네도 얼른 하나 사놔’라는 지인의 권유에 전세에서 자가로 갈아탄 것뿐인데, 어느 순간 20억대 자산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러니 내가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민주당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에 집도 못 사고 일순간 벼락 거지가 된 부류들도 있는데, 놀라운 건 이들 역시 꽤 많은 수가 대깨문이라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대깨문에도 급이 있는데 이런 자들은 최하급 대깨문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더욱 효과적인, 부동산 양극화의 희생양이자 정치적 제물로서 그들의 앞날은 자명하다. 여론조사 그래프를 통해 표출되는 여권의 푸른 막대기, 그 안의 작은 나노미터급 화소 하나가 되기 위해 그들은 표와 혼을 바칠 것이다.
직장 다니며 월급 받아 봐야 얼마나 가겠느냐고, 너도 얼른 가게 하나 내서 사장님 소리 들어보라던 동창 녀석이 어제 죽었다. 최저 시급에 못 이겨 직원들을 다 내보내더니, 제 마누라와 자식들까지 동원해 가게를 지키다가 코로나로 인한 집합 금지 탓에 제 목에 그걸 감았다. 퇴직 전날까지 매 오던 그 파란 넥타이를. 장례식장에 들러 육개장 한 그릇을 얻어 먹은 나는 그 길로 외제차 전시장에 들려 벤츠를 계약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을 말하고, 촛불을 말하고, 서민을 말하는 정치인을 비로소 신봉한다. 차별화를 꿈꾸며 남들보다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집, 차, 범접할 수 없는 부의 향연을 가능케 해준 그들의 이중성과 모순성에 무한히 감사하다. 누군가가 말한 ‘사람 사는 세상’이 뭔지 이제야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것은 잘사는 ‘사람’이 더 잘사는 세상, 못사는 ‘것’들은 더 못사는 세상이었다. 그래. 내가 ‘사람’이었다.
출근길에 잡념이 길었다. 어느새 회사에 도착했다. 동지들은 머리띠를 두른 채, 오늘도 파업에 열중이다. 뒤늦게 밝히지만 나는 귀족 노조다. 공무원을 능가하는 정년이 보장되고 평균 연봉은 1억을 상회하는, 게다가 근무 중 유튜브 시청이 가능하며 그것을 빌미로 노동자의 권리와 전태일의 영혼을 소환할 자격을 갖춘 신지배 계층이 바로 나인 것이다.
회사 정문에 위태롭게 선 용역업체 소속 경비원이 사원증 제시를 요구한다. 그도 대깨문이다. 헛것이나 바라는 비정규직, 감히 전태일의 후예를 가로막다니. 노동자에게도 급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아마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것이다. 이윽고 사원증을 확인한 경비원이 버튼을 눌러 차단기를 올린다. 사이드미러 속에 멋들어지게 경례를 올려붙이는 그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다 이내 사라지고 만다.
주차를 마친 나는 차 시동을 끈다. 시계를 본다. 한 시간 정도의 가벼운 지각은 사 측도 함부로 문제 삼지 못할 것이다. 최고급 나파 가죽 시트를 젖힌다. 라디오를 켠다. 벤츠의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으로 듣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언제나 훌륭하다. 오늘 게스트는 대선에 출마하는 전 법무장관이라고 하니, 5.1채널 서라운드 스피커로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나 감상해야겠다. 오프닝 멘트가 올랐다. 그가 말하기 시작한다.
사람 사는 세상…
촛불 정신을 받들어…
서민이 잘사는 나라를…
음… 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