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1 미팅을 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가 팀 매니지먼트를 위한 탁월한 방법이라고 칭송한 조직 관리 제도로, 우리도 회사 초기부터 도입해서 실행 중이다. 보통 1주에 1번, 1시간 내외로 나의 매니저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차분한 공간에서 회사 방향과 전략에 대한 질문부터, 업무 적응과 팀워크에 대한 어려움, 개인 커리어 고민 등 큰 주제부터,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되나 싶을 정도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오간다. 핵심은 두 사람 사이의 신뢰다. 일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회사에 있다면, 그 사람이 나의 매니저라면, ‘심리적 안전감’을 가지는 중요한 장치가 되지 않을까.
나 또한 대표로서 1대1 미팅을 한다. 팀 규모가 작았을 때는 모든 팀원과 한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든든한 중간 관리자들이 있기에 주로 리더들과 1대1 미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추석 직후 변화가 생겼다. 1997년생 CEO 어시스턴트가 팀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쉽게 표현하자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차근차근히 처리할 수 있는 호흡이 긴 업무도 있지만 매일 매일 하는 일이 달라져서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일을 잘하려면 나의 뇌와 동기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기에, 서로 나란히 앉아 긴밀하게 일한다. 그리고 입사 7일 차, 첫 번째 1대1 미팅이 찾아왔다.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이야기를 나눈 주제는 자기 일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딱 떨어지게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질문이다. 마치 CEO의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100명에게 100가지 다른 대답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달까. 대화를 나누다 보니, 15년 전 내 첫 직장에서 보낸 하루가 기억났다.
야심만만하게 회사라는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금세 깨달았다. 하루하루는 막막하고, 학교라는 온실 속에 있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헤매던 어느 날 밤, 종일 미팅을 같이 한 팀장님이 나를 옆자리로 불렀다. 흰 종이를 하나 꺼내더니 이렇게 질문했다. “박소령씨는 오늘 뭘 배웠어요?” 그리고 본인도 오늘 뭘 배웠는지에 대해서 손으로 적어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배운 것을 종이에 다 적고 보니, 나의 하루는 그 어떤 날보다 충만했다. 당시 대화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빛으로 끄집어 올려졌던 기분만큼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엇을 배웠는지 간단하게 정리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는 매일 무엇이든 배우게 된다. 나에 대해서 배우기도 하고, 타인과 맺은 관계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여러 사건이 연결되어 커다란 깨달음이 한순간 확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려면 ‘오늘 하루 있었던 일’로 그저 놔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배웠던 일’로 생각을 두세 번 더 깊게 파고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추론 능력은 일할 때도 도움이 되지만 일과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내 일의 정체성은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를 내릴 때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CEO 어시스턴트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세 벽돌공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첫째는 “벽돌을 쌓고 있죠”, 둘째는 “교회를 짓고 있죠”, 마지막은 “하느님의 집을 짓고 있죠”라는 답이 돌아온다. 어떤 답변을 하는 사람이 될지는 내가 직접 결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