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테니스가 끝난 지 한 달이 됐지만 결승전에서 조코비치가 울던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경기에서 졌거나 지고 있을 때 울었다면 벌써 잊혔을 것이다. 그는 한창 게임을 따라잡던 도중에 구슬프게 울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조코비치는 메드베데프에게 두 세트를 내리 지고 끌려갔다. 세 번째 세트도 5대 2까지 벌어졌다. 그는 그때 라켓을 내동댕이치며 화를 냈다. 이후 두 게임을 연거푸 이겨 5대 4까지 쫓아갔다. 그때 울었다. 벤치에 앉아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왜 울지? 역전도 할 수 있는데. 상대방을 지치게 해서 경기를 뒤집는 게 특기잖아. 조코비치, 왜 울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조코비치는 말했다. “나는 오늘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을 관중들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들의 엄청난 사랑과 에너지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에너지와 감정은 21번째 그랜드슬램 우승만큼이나 강렬했습니다.” 그럴듯한 설명이었으나 여전히 미진했다.

얼마 전 ‘F1의 황제’로 불렸던 독일 선수 미하엘 슈마허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가 데뷔했을 때 F1은 아일톤 세나라는 브라질 선수가 지배하고 있었다. 세나는 41번의 레이스에서 우승했고 월드 챔피언을 세 번이나 거머쥔 선수였다. 그렇지만 세나보다 아홉 살 어린 슈마허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세나를 위협했다. 1991년 F1에 데뷔한 슈마허는 92년 3위, 93년 4위를 기록하며 세나의 아성에 도전했다. 경기장 안팎에서 세나와 슈마허는 서로를 비난하며 극도의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1994년 5월 1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F1 레이스에서도 세나는 선두로 달리고 있었다. 슈마허가 바로 뒤에서 시속 300㎞로 따라붙고 있었다. 여섯 번째 바퀴에서 세나는 곡선 코스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우측 방호벽을 전속력으로 들이받았다. 헬기가 그를 즉시 병원에 이송했으나 그날 숨지고 말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조코비치 눈물의 단서를 찾은 것 같았다. 세나는 슈마허라는 괴물에 뒤를 쫓기며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그는 절대로 슈마허에게 선두를 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나의 사진을 방 안에 붙여놓고 영웅으로 삼던 스물다섯 살 독일 신예에게 서른네 살 전성기의 그가 챔피언 트로피를 내줄 수는 없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면, 몇 년에 걸쳐 평화로운 은퇴를 맞이했을 것이다. 세나는 눈물을 거부했고 경기장에서 파국을 맞았다.

찾아 보니 세나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이 영화를 보자 세나의 비극이 더욱 명확하게 이해됐다. 그가 F1에 데뷔했을 때는 알랭 프로스트라는 프랑스 선수가 최대의 라이벌이었고 세나는 죽을 힘을 다해 프로스트를 뛰어넘었다. F1 조직위인 세계자동차연맹이 남미 출신인 자신을 정치적으로 차별한다고 믿었고 승리만이 모든 것을 보상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F1 최고봉에 오른 그에게 슈마허가 나타난 것이다. 세나가 사고를 당하기 전날 예선전에서 오스트리아 선수가 콘크리트 장벽을 들이받고 즉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많은 선수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기권했고 세나 역시 흔들렸다. 친한 의사가 슬픔에 빠진 세나에게 말했다. “너는 이미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야. 이제 그만 은퇴하고 낚시나 하러 다니지.” 세나가 대답했다. “세상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어요. 나는 계속 경기를 해야 한다고요.” 그는 애송이 슈마허에게 누가 F1의 왕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조코비치가 울음을 터뜨린 비밀이 비로소 풀리는 것 같았다. 그도 마지막 세트 5대2에서 ‘세나의 고민’과 맞닥뜨렸다. 두 번째 서브도 시속 200㎞를 찍는 러시아의 젊은 괴물(흥미롭게도 그와 메드베데프 역시 세나와 슈마허처럼 올해 서른네 살, 스물다섯 살이다)이 무서웠고 그 서브를 못 받아내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5대4까지 따라갔을 때 그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속도를 줄였다. 이제 정상에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페더러나 나달이 자신에게 밀려 그랬듯이. 눈물이 흐르는가 싶더니 서럽게 울음이 터졌다. 이것이 내 맘대로 상상한 조코비치 눈물의 비밀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조코비치의 순간을 만난다. 앞에는 백정이 칼 쓰듯 라켓을 내리찍는 메드베데프가, 뒤에는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시속 300㎞로 밀어붙이는 슈마허가 있다. 세나가 될 것인가, 조코비치가 될 것인가. 나는 기꺼이 조코비치를 택할 것이다. 울어라 맘껏, 내 안의 조코비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