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재계약을 하기로 한 날. 김씨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동산으로 향했다.
“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월 180만 원으로 하지요.”
김씨는 제 귀를 의심했다. 원래 월세는 100만 원이었다.
“아니 자그마치 두 배 가까이 올린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저 사는 집이랑 선생님께 세 드린 집이랑 해서 달랑 두 채 갖고 있는데, 올해 종합부동산세가 얼마가 나왔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천만 원입니다. 작년의 다섯 배가 나왔어요.”
집주인 이씨가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말한다.
“재산세까지 합치면 일 년에 천오백 만원이 넘어요. 저도 월급쟁이 주제인데 무슨 수로 그 세금을 내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한번에 80만 원씩이나.....”
“그럼 세금을 한 번에 다섯 배 올리는 건 말이 되고요?”
부동산 사장이 끼어들어 중재를 한다.
“사장님, 지금 재산세니 종부세니 너무 올라서 다른 집들도 다 난리예요. 그나마 원래 살고 계시는 분이니까 이 정도로 해드리는 거지, 세입자 바뀌는 집들은 이백만 원이 기본이에요 지금.”
그러면서 부동산 어플을 켜서 김씨의 눈앞에 들이민다.
진짜였다. 최저 백팔십만 원에 기본이 이백만 원, 심지어 이백오십만 원까지도 보인다.
김씨는 고민했다. 확 박차고 나와 버리고 싶지만 막내가 고등학생이라 당장 이사를 갈 수도 없다. 게다가 다른 곳들도 다 마찬가지인데 어디로 가나.
사정사정한 끝에 겨우 150만 원으로 깎은 것으로 만족하고, 김씨는 부동산을 나왔다.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갖고 들어가고 싶은데, 앞으로 매달 고정비가 50만 원이 더 들어가게 생겼으니 치킨도 사치다.
치킨집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 김씨는 그냥 돌아섰다.
월세 인상은 뼈아프지만, 그래도 집주인이 세금 쳐맞는 걸 보니까 속은 좀 시원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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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여주인 박씨는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되어 걱정이다. 최근 3년간 점점 떨어진다 했더니, 이제는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
저만치서 단골 김씨가 들어오려다 그냥 가버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요즘은 왜 잘 안 오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오시더니.”
얼른 달려가 붙잡고 묻자 김씨가 미안한 듯이 씩 웃었다.
“월세가 너무 올라서요. 이제 월급날에나 한 번씩 먹어야겠어요.”
“그래도 자주 좀 와 주세요. 부탁 좀 드려요.”
김씨를 보내고, 박씨는 씁쓸한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월세가 난리라더니 정말이구나.
그나마 작은 집 한 채 갖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뉴스에서 종부세 폭탄이니 뭐니 떠드는데 남의 세상 얘기이니 별로 관심은 없다.
그거야 저어기 저 강남 부자들만 내는 세금이라니까 박씨가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었다.
비싼 집 가졌으면 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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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주인 박씨의 아들, 취업준비생 최씨는 그날 밤 날벼락을 맞았다.
원래 월 50만 원씩 주던 용돈을 30만원으로 내리겠다는 통보였다.
“아 엄마, 한 달에 30만 원 갖고 어떻게 살라고!”
“어쩌겠니. 장사는 점점 안 되고, 가게 월세도 또 올랐는걸.”
성질을 내고 일어나는데 문득 테이블 위에 있는 신문의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종부세 폭탄 논란... 정부 ‘전국민의 2프로만 해당’]
최씨의 눈에서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이 집 부자 적폐 놈들이 전국민의 달랑 2퍼센트가 내는 걸 가지고 이렇게 죽는 소리를 하다니...!
물론 그 정부가 말하는 2퍼센트라는 것은 인당과세라, 가족 단위로 따지면 실제로는 세 배 이상 많고, 서울로만 따지면 그보다도 훨씬 높은 비율이 되지만 최씨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거기까지 생각할 머리가 없다.
가진 놈들이 2억을 더 내든 2천만 원을 더 내든 상관없고, 그의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날아간 내 용돈 20만 원에 대한 분노뿐이다.
‘이건 다 가진 놈들이 부를 꽉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야!’
가뜩이나 울화통이 터지는데 그 옆에 실린 기사가 화를 돋운다.
-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종부세 전면 재검토 공약을 내걸었다.
재산을 싹 몰수해 버려도 모자란데 세금을 깎아주겠다니 윤석열 이 자는 영 못쓰겠다.
역시나 이재명 후보가 그나마 시원하게 사이다를 먹여준다.
- 종부세 감세는 소수 부동산 부자만 혜택을 본다. 종부세보다 더 강력한 국토보유세를 신설하겠다.
그래 이거지!
최씨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속으로 외친다. 이재명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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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집주인 이씨는 최씨와 같은 기사를 읽다 그만 신문을 집어 던졌다.
“종부세도 모자라서 국토보유세? 월세를 삼백만 원으로 올리란 얘긴가, 원.”
제발 조금만 깎아달라고 사정사정하던 세입자 김씨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영 입맛이 썼다.
월세 50만 원 올려 봐야 세금 상승분만도 못한데, 나만 나쁜 놈이 되었다.
“대체 웃는 자는 누구인지.....”
이씨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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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파란 기와집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올해 종합부동산세 세수가 5조 7천억 원이란 말입니까?”
“예, 대박입니다. 작년의 세 배고, 내년에는 더 오를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 국민들이 부자가 되어 간다는 증거로군요, 훠훠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