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미스터트롯 콘서트를 보러 온 한 임영웅 팬./김동환 기자

“올해도 콘서트 하겠제?”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는 엄마를 죄인처럼 슬쩍 훔쳐본다. 티케팅에 실패했다. 작년에 엄마를 임영웅 대구 단독 콘서트에 보내주려고 오빠와 나, 그리고 사촌 언니까지 동원해 티케팅에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임영웅 신드롬을 우습게 본 탓이었다. 엄마가 덕질을 시작한 지도 어언 4년, 그로 인해 엄마의 일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엄마는 노래를 그리 즐겨 듣던 분은 아니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도, 유달리 좋아하는 드라마나 연예인도 없었다. 눈뜨면 출근하고 해지면 퇴근하는 직장인 엄마는 저녁 먹으며 생생 정보통을 보고, 매일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일일 드라마를 보고 나면 TV를 끄고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엄마의 일상에 ‘외간 남자’가 끼어들었다. 감기려는 눈을 붙잡고 늦은 밤까지 TV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는가 하면, 엄마에게는 큰 쓸모가 없는 (마스킹 테이프 따위가 들어있는) 굿즈 세트를 사기도 했다.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의 침대 위 벽에는 요상한 것들이 늘어갔는데, 임영웅이 모델인 치킨 브랜드 상자(얼굴만 곱게 잘라놓은 조각), 그가 모델이 된 브랜드의 종이 가방 등 그의 얼굴이 프린트된 모든 종이류를 벽에 하나둘 붙여두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신기하고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본인만의 ‘최상급’ 표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완전 오리지날’이라고 하거나, 특히 좋아하는 임영웅의 무대를 보여주며 “노래를 윽시 정성스럽게 부른다”고 한다. “정성스럽게 부른다”는 말을 오래전 들은 적 있다.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그제야 생각났다. 엄마에게도 덕질의 역사가 있다. 엄마는 아직도 결혼 전 다녀왔던 조용필 콘서트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하고 (가수는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다), 조용필 기사를 스크랩해 둔 파일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덕질 DNA가 깨어난 것이다.

엄마의 10대, 20대 시절이 눈앞에 그려졌다. 카세트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노래를 듣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버스를 타고 콘서트장에 갔을 엄마. 무대와 거리가 멀어 가수가 면봉만 해 보여도 한 공간에 있다는 것으로 행복했을 엄마. 그것도 잠시 어느새 그런 즐거움과 점점 멀어졌다. 음악 프로그램엔 갈수록 엄마가 듣기엔 요상한 음악들만 나오고, TV 예능을 봐도 누군지도 모를 아이돌 가수만 돌아가며 출연하니 리모컨을 들고 있지만 그다지 채널 둘 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문화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엄마는 다시 주인공이 되어 음악을 듣고,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방송을 기다린다.

어느 날 본가에서 TV를 보는데 임영웅이 모델인 광고가 많아 놀랐던 적이 있다. 그를 모델로 쓰는 광고의 타깃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우리 엄마 또래를 향한 기업의 구애인 것인데, 그를 증명하듯 우리 집에도 그가 광고한 제품이 하나둘 쌓여갔다. 여태껏 소비의 큰 중심을 차지하고도 주요 마케팅 타깃이 되지 못했던 중년 여성들이 드디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제 엄마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광고 모델을 골라 물건을 산다. 그게 합리적 소비라는 말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이 개인적으로는 고맙다. 내가 밖에서 즐겁게 여가 시간을 보낼 때 엄마는 집에서 뭘 할까 문득 떠오른다. 물론 엄마는 내가 아니더라도 알아서 잘 지내지만, 마음속 한편에 엄마는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 수동적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순간이 있었다. 당연히 모든 자식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임영웅 덕분에 마음의 큰 짐을 덜었다. 엄마는 신나게 ‘덕질’한다.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아도 알아서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