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어르신 중에 혈압을 정상 기준으로 떨어뜨리고 나서 어지럽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뇌혈류를 유지하는 수준보다 혈압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정상 혈압은 수축기가 120(mmHg) 이내고, 이완기는 80 이하다. 고령자도 혈압을 그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혈압을 정상 수준으로 낮추면, 심장마비, 뇌졸중, 심부전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치매도 줄인다. 하지만 고령자는 일어설 때 혈압이 떨어지는 기립성 저혈압에 취약하다. 혈압을 정상으로 낮추면, 저혈압 증세로 어지럼증이나 낙상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허약하고 골다공증이 있는 노인은 ‘낮은’ 혈압이 위험하다. 일부 연구는 노인 혈압을 너무 공격적으로 낮추면, 신장으로 가는 혈류를 떨어뜨려 급성 신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뇌혈류 감소로 인지 기능 장애가 온다고도 말한다. 이런 논쟁은 혈당, 콜레스테롤도 마찬가지다.
기실 정상이라고 정해 놓은 기준이 과연 고령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 회의가 든다. 기준을 정하는 연구나 임상 시험에 65세 이상 고령자는 상대적으로 적게 참여한다. 안전성을 이유로 노인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등의 정상 기준이 과하게 말하면 40~50대의 질병 예방 참고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많은 고령자가 건강검진이나 외래 검사에서 건강 지표가 정상 기준치에 들어와 있느냐를 놓고 일희일비한다. 그런 기준을 무시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인류는 요즘처럼 나이 많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예상 못 했다. 이제야 의료 학회와 단체들이 질병 연구에 고령자를 더 많이 포함하거나, 기준을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 먼저 늙어본 일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와다 히데키는 고령자 적정 의료를 설파하는 유명 정신과 의사다.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다. 우리나라에도 몇 권이 번역 출판됐다. 최근 펴낸 ‘70대에 행복한 고령자’(지상사 출간)에서는 고령자에게 건강검진 수치에 갇혀 지내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는 과감하게 더하기 의료를 하라고 권한다. 중년에 하는 다이어트나 혈압 낮추기 같은 빼기 의료를 고령자가 따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암에 덜 걸린다고 주장한다. 콜레스테롤치가 떨어지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우울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고, 남성 호르몬 생성은 줄어서 의욕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콜레스테롤 정상 기준에 맞추려다 힘없는 노쇠 노인이 된다고 일갈한다.
하기야 몸무게도 그렇다. 사망 위험이 가장 낮은 구간은 체질량지수 23~24(건강한 비흡연자)이다. 비만 분류 기준에 따르면 과체중에 해당한다. 사망 위험이 높아질 나이가 되어가면, 과체중이 사망 위험 가장 낮은 정상 기준이 되는 셈이다.
와다 히데키의 말이 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고,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하지만, 그의 책이 고령자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 들면 더하고 채우는 의료를 하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다. 건강 관리 목적은 건강 지표 정상 수치에 맞추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건강한 몸과 뇌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괄된 기준으로 고령자는 자칫 과잉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암을 찾아내는 건강검진을 75세 넘어가면 권장하지 않는 추세다. 국가는 75세 이상 고령자 건강 검진을 지원하지 않는다. 대신 노쇠 측정이나, 인지 기능, 구강 기능 검진 활동을 장려한다. 그 나이에는 숨어 있는 질병을 찾아내지 못하여 조기 사망할 확률보다, 신체 기능을 못 해서 삶이 피폐해질 우려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에서는 질병 의술보다 기능 의학이 대세다.
소아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듯, 노인은 성인의 연장이 아니다. 나이 들면 신체 모든 면이 경직되고, 건조하다. 인대 탄력은 줄어서, 가만히 있어도 뻐근하다. 췌장 호르몬과 인슐린 생산 용량은 석유 매장량과 같아서 말년에는 고갈된다. 젊은 시절, 탄수화물 과다 섭취는 비만 원인이지만, 고령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공급 없이 근력 회복이 어렵다. 노년기 절제와 줄임은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 곧 맞이할 초고령 사회, 채우고 더하는 의료,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