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평창 해발 700미터의 산중은 계절이 늦다. 아직은 정상이란 뜻이다. 다행이다! 서울은 꽃이 지고 있지만, 이곳 산중은 꽃이 한창이다. 진달래는 지고, 산철쭉, 매발톱꽃, 이름 모를 야생화가 때를 알고 골짜기 가득 피어오르고 있다. 꽃이 진 골짜기는 꽃보다 아름다운 녹색 찬란함이 소리 없이 번진다. 서울과 평창을 한 주에 반반씩 살아가는 나의 일상은 한 계절을 두 번 사는 기쁨을 누린다.
그런데 수상하다. 눈에 보이는 산과 골짜기는 어제의 봄과 다름없는데, 부는 바람은 봄바람이 아니다. 몸으로 느끼는 계절이 낯설고 수상하다. 하늘의 비는 걱정하던 봄 가뭄을 해소시켰으나, 며칠씩 장마처럼 비가 내린다. 위험하다! 뿌려 놓은 씨앗이 발아하다가 모두 썩어버릴 수 있다. 이곳 이웃은 지난해 콩밭 2만 평을 갈아엎었다. 봄 가뭄 때문이었다. 우리도 도라지 밭에 싹이 하나도 나질 않았었다. 허망했다.
오늘은 형제들과 강릉에 바닷바람 쐬러 다녀오다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커다란 사과 밭이 높은 망으로 둘러쳐 있고, 선풍기가 붙어 있었다. 강풍에 의한 낙화, 낙과를 막으려는 것이다. 사과도 30도가 넘으면 열 스트레스로 호르몬 장애가 온다. 그러면 낙과, 크기 불균형, 수량 감소가 온다. 습하면 탄저병이 번진다. 고온다습을 막으려고 선풍기까지 등장한 것이다. 사과 주 생산지인 대구의 사과 밭을 갈아엎고, 평창 고랭지에서 사과 재배가 시작된 지 그 얼마라고 온난화 위기가 여기까지 닥친 것인가?
이 아름다운 봄날, 들려오는 소식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제주도에 900밀리 폭우가 왔다. 사막의 두바이엔 몇시간 만에 반년치 비와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졌다. 수마트라엔 홍수로 산사태가 나고, 2만 채가 물에 잠겼다. 남미에선 가뭄의 땅에 폭우로 강이 범람하여 중첩 재앙을 겪었다. 옥수수 세계 최대 생산지가 물에 잠겼다. 사룟값이 어찌 될 것인가? 캐나다엔 또 산불이다. 지난해 여의도 면적의 4만5000배가 불탔다. 올해는 더할 것이라 한다. 텍사스는 벌써 서울 면적의 7배 이상 불탔다. 시속 100킬로의 강풍마저 합세했다. 사상 최악이다. 이 결과, 지구의 온실효과는 가속되리라. 남극조차 섭씨 20도를 넘어선 세상에! 멸종 위기종은 멸종하고, 해수면이 높아져 케네디·나리타 공항이 침수 위기다. 과연 인천공항은!
지구를 구하자고 한다. 착각이다! 지구는 자신의 시스템에 따라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지구는 죽지도 징벌도 받지 않는다. 멸절의 시나리오는 오직 인간사일 뿐이다. 인간의 탐욕, 편리함, 쾌락 추구는 자멸의 길이다. 오늘도 내 휴대폰엔 돌풍, 낙뢰, 붕괴, 대설, 작물 관리 주의보가 날아든다. 농가의 피해는 자급 불가한 도시민엔 재앙이다. 사과 1만원이 아니라, 쌀 한 가마 100만원이 될 수도 있다. 종말의 주의보는 이미 2천년 전에 발령되었다. “회개하라.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가난한 마음으로 필요한 만큼만 소유·소비해야 한다. 현 인류는 멸절을 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