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군의관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의무실로 불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너의 5년 후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임파선 암이 의심돼 조직 검사까지 받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나의 물음에 군의관은 “탈모”라고 답해줬다.정확한 진단을 위해 군병원으로 외진을 갔다. 암인가 싶었을 때는 민간 병원까지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탈모는 그렇지 않았다. 피부과 의사는 내가 베레모를 벗자마자 진단을 끝냈다. 탈모가 맞았다.

누군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겠으나,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매번 같은 옷만 입다 보니 주변에서 옷을 주기도 했고, 머리는 빡빡 밀었다가 길어서 불편해지면 다시 밀기를 중학생 때부터 반복했다. 정말이지 나는 머리카락 따위 없어도 아무런 타격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군의관이 장담할 수 없다던 5년보다도 훨씬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 이마 라인은 강남 아파트 값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그리고… 머리 따위 뭐가 대수냐고 생각했던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은 의외로 남의 머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원래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머리카락이 없으면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라고, 작가라면 ‘안’과 ‘못’의 차이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놀리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더 잃기 전에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언뜻 모욕처럼도 들리는 그 얘기들을 듣다 보니 나 역시도 모욕(毛慾)이 생겼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자크 라캉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머리카락이 나거나, 귀를 막거나. 과연 어떤 게 더 쉬운 일일까?

황바울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