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좋아한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과 4세대 걸그룹의 승부다. 나는 에스파, 아이브와 갓 데뷔한 르세라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3세대 걸그룹도 모르는 독자에게 4세대 걸그룹을 이야기하기에 이 칼럼은 역사가 너무 깊고 분량은 너무 짧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나는 아이돌을 좋아하지만 아이돌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다.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거슬려서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돌 멤버들은 데뷔가 빠른 아이돌을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선배 후배 따지는 문화를 지적하는 글도 꽤 있었다. 소용없는 일이 됐다.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이미 아이돌 세계의 뉴노멀이다. 한 아이돌이 음악 프로에 나와 퀴즈의 정답으로 “비발디 선배님의 사계!”라고 외쳤을 때는 절망했다. 비발디 선배님이라니 맙소사. 그는 바흐와 헨델의 선배일 수는 있지만 너의 선배님은 아니란다.

이런 불만을 소셜미디어에 풀어놓자 누군가 지적했다. 아이돌이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 연예인 팬들에게 악플 테러를 받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어떤 걸그룹은 다른 그룹에게 선배라는 명칭을 쓰지 않은 것 때문에 사과문까지 발표했던 모양이다. “건방지다고 매장되는 것보다는 멍청하다고 욕먹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일 것”이라는 글을 보고는 조금 울적해졌다. 그러니 나도 여기서는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세상에서 아이돌 팬덤만큼 무서운 건 없다.

한번 고착된 표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알바생들의 뒤틀린 경어법도 결국 고쳐지지 않았다. 과잉 친절의 경어법을 구사하지 않으면 항의하는 고객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아이돌의 과한 경어법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비발디를 선배라고 부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조언은 꼭 하고 싶다. 대학 시절에 자주 했던 말이 하나 있다. 죽은 선배가 최고의 선배라는 것이다. 그들은 말이 없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