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0일은 야구인 사이에서 한국 야구 ‘치욕의 날’로 일컬어지는 날이다. 당시 야구 국가대표 선동열 감독은 국회 문체위 국감장에 끌려나와 “경기에 이기려고만 생각해서 죄송하다”며 의원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다. 대표팀이 그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온 지 1달 만이었다.

지난 2018년 10월 10일 선동열 2018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앉아 있다./조선일보 DB
지난 2018년 10월 10일 선동열 2018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앉아 있다./조선일보 DB

야구 국가대표 감독 입에서 이런 발언이 나오게 된 것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등이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청탁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벌어졌다. 국정농단 시초가 됐던 미르·K스포츠재단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문재인 정권 초기, 적폐 청산 흐름에 편승한 손 의원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측근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선 감독이 청탁을 받고 병역 면제 혜택을 주기 위해 실력 미달 프로 선수들을 대표팀에 선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선 감독은 억울한 표정으로 “경기력만 보고 성적만 가지고 뽑았다”고 했다. 손 의원은 5개 구장 경기의 선수들 경기력을 TV 중계로 체크한다는 선 감독에게 “연봉 2억 받고 TV 보며 일하느냐”고 질책했고, “아시안게임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퇴하라고 고함쳤다. “왜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은 대표팀에 안 뽑았냐”고도 했다. 선 감독은 “아마와 프로는 실력 차가 많다”는 당연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민 정서와 시대 흐름을 모른다” “불공정에 따른 청년들의 박탈감이 크다”는 질책이 이어졌고, “좋은 성적을 위해 선수들 경기력만 봤다”는 체육인 선 감독은 국감이 끝난 뒤 “앞으로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정치인이나 할 법한 말을 떠밀리듯 남겼다. 그는 한 달 뒤 사퇴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야구 대표팀 최초의 전임 감독으로 선임된 지 1년 만이었다. 현재 전임 감독제는 폐지됐다.

한국 야구 몰락의 원인은 물론 다층적일 것이다. 하지만 실력으로 평가받는 스포츠 세계에까지 정치 논리를 들이밀던 이날 여의도에서부터 이미 그 치욕이 시작된 건 아닌가. 수준 낮은 한국 정치의 폐해가 국정을 막론하고 과연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까지 망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