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프로축구 리그 중 하나인 스페인 라 리가가 인종차별로 들끓고 있다. 피해자는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3·브라질). 지난 22일 발렌시아 원정 경기에서 “원숭이(mono)” “죽어라!”라는 발언을 관중에게 수십 차례 들어야 했다. 리그 10골 9도움을 기록한 탁월한 기량을 가진 선수가 인격 모독 속에 경기를 치른 것. 풍선을 던져 경기를 방해하는 관중도 있었다. 참다 못한 비니시우스는 관중과 충돌했고 눈물까지 흘렸다. 스페인 생활 5년 차인 비니시우스는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을 받은 게 지금까지 10번이 넘는다. 지난 1월엔 AT마드리드 응원단이 검은 인형에 비니시우스 유니폼을 입혀 다리에 목매단 일도 있었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바야돌리드와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이 24일 경기에 앞서 “인종차별주의자는 축구에서 나가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함께 들었다. /AFP 연합뉴스

스페인왕립축구연맹은 24일 발렌시아에 5경기 경기장 부분 폐쇄 징계와 벌금 4만5000유로(약 6390만원)를 내리고, 발렌시아는 관중 3명에게 경기장 출입을 평생 금지했다. 그런데 하비에르 테바스 라 리가 회장이 “리그에서 인종차별은 극히 드문 일”, 발렌시아 구단이 “모든 우리 팬이 차별주의자인 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정말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모르냐”는 비난이 밀려들었다.

남의 나라 일 같지만 아니다. 발렌시아는 과거 이강인(22·마요르카)이 몸담았던 팀. 이강인도 ‘손으로 눈 찢기’ 등 인종차별을 겪어왔다. 최근에도 하비에르 아기레 마요르카 감독이 이강인을 향해 “중국인, 뭐 하는 거야”라고 말한 적도 있다. “독일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며 컸다”고 말한 손흥민(31·토트넘)은 지금도 잉글랜드에서 거의 매 시즌 차별을 겪는다. 박지성(42), 기성용(34·서울) 등 과거 유럽 무대에서 뛰었던 모든 선수도 마찬가지다.

한국 국내 스포츠 리그도 홍역을 겪었다. 작년 6월 프로야구 KIA 외국인 투수였던 로니 윌리엄스(27)가 소셜미디어로 인종차별 발언을 듣고 욕설로 받아치는 일이 있었다. 2020년엔 미국에서 귀화한 흑인 농구 선수 라건아(34·전주 KCC)가 자신과 가족을 겨냥한 차별 욕설을 공개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번 인종차별에 대해 비니시우스는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 말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도 그를 지지하면서 대책을 촉구했다. 은퇴한 축구 선수 개러스 베일(34·웨일스), 잔니 인판티노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 등도 공개적으로 비니시우스 지지를 표명했다. 비니시우스는 인종차별이 해결되지 않으면 팀을 떠날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갈등의 승자는 비니시우스가 되어야 한다. 가해자는 그대로인데 피해자가 떠나야 한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