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를 위한 확산방지구상(PSI) 고위급 회의에서 이도훈 외교부 2차관,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담당 차관, 사라 로버츠 호주 외교부 심의관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31일 주최하는 다국적 해양훈련 ‘이스턴 엔데버23′이 기상 악화로 대폭 축소됐다. 한국과 미국, 일본, 호주의 함정이 부산항에서 나란히 출항해 부산 남방 공해상에서 통신망 점검 훈련을 할 예정이었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됐다. 이에 따라 함정 사열도 생략돼 ‘자위함기’를 게양한 일본 호위함이 우리 국방 장관에게 경례하는 것은 없던 일이 됐다. 야당이 지난 한 주 동안 “윤석열 정부가 일본 군국주의를 눈감아주려 한다”며 성토하고 비판에 열을 올렸던 그 장면이다.

이번 훈련은 30일 제주도에서 개막한 확산방지구상(PSI) 20주년 고위급 회의를 계기로 기획됐다. PSI는 대량살상무기(WMD)와 운반 수단, 관련 물자의 불법 확산 방지를 위해 2003년 출범한 국제 협력체제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주도로 잉태돼 현재는 106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2009년 95번째 참가국으로 ‘지각 합류’했는데 참여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며 미국의 동참 요구를 거절했고, 한미 관계 악화로 이어졌다.

그래서 출범 20주년을 맞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제주도 회의가 갖는 의미가 남달랐다. 북·중·러의 제재 회피가 횡행하는 우리 앞바다에서 공동으로 훈련을 실시하는 상징성도 컸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불법적 핵 물자 조달에 대응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들의 협력은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고 했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PSI를 더욱 확대하고 성장시키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에서는 이런 PSI의 출범 취지와 해상 훈련의 목적 등은 부각되지 않고 ‘욱일기’ 논쟁만 남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거의 모든 외교 현안에 ‘친일(親日)이냐 아니냐’의 잣대를 들이대온 야당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했다. 김대중·문재인 정부 때도 자위함기를 단 일본 함정이 국내에 입항한 사진이 공개됐지만, ‘선택적 감별’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PSI 직전 이뤄진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예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확산방지(PSI)가 가장 절실한 나라에서 북핵은 뒷전으로 밀린 ‘웃픈’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