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광주 남구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전유공자들이 묵념하고 있다./연합뉴스

취재하면서 알게 된 6·25 참전 유공자가 있다. 강원도에 사는 그에게 며칠 전 전화를 걸었는데 아들이 대신 받았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중인데 위독해 통화가 어렵다”고 했다. 작년 그 참전 유공자는 대한민국 보훈(報勳) 정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었다. 전국 6곳에 불과한 보훈병원에 가지 않으면 6·25 참전 유공자에게 약값조차 지원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얘기였다. 힘든 몸에도 “정부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했다. 나이 80~90된 노병(老兵)에게 약값은 곧 목숨값이다. 온몸에 아프지 않은 데가 없고, 감기만 걸려도 자칫 폐렴으로 이어질까 노심초사 한다.

이 나라가 참전 유공자에게 주고 있는 혜택은 실상 대단치 않다. 월 34만원 참전 명예수당을 주는데 대부분 약값으로 나간다. 수당 이름처럼 ‘명예’는 없다. 참전 유공자가 위탁 병원에 가면 진료비 90%를 지원해주지만 이를 혜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65세 이상 모든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동네 의원에서 1만 5000원 이하는 진료비 중 1500원만 낸다. 참전 유공자는 고궁, 독립기념관, 국·공립박물관 입장료가 무료다. 그러나 이는 65세 이상이면 원래 받는 혜택이다. ‘참전 유공자 예우란 게 있느냐’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참전 유공자들이 약값을 지원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2019년 국가보훈처에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선심성 예산은 펑펑 쓰는 정부가 “예산이 없다”고 말한다. 이 나라가 무엇을 우선하는 국가인지 알 수 없다.

국가보훈처는 인사혁신처·법제처 등과 함께 국내 5개 처(處) 중 하나다. 직원 수와 사업 규모에서 기획재정부·교육부 같은 18개 부(部)에 밀린다. 구조적 한계로 예산 집행에서도 뒷순위다. 미국은 ‘제대군인부’가 보훈을 담당한다. 국방부 다음으로 큰 부처다. 국가 예산에서 보훈 관련 비율이 3% 가까운 미국·호주·대만 등과 달리, 우리는 1.7%에 그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한다. 보훈 단체에선 참전 용사 약값 문제 해결에 연간 70억~110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한다. 문재인 정부 4년간 나랏빚이 300조원 늘었다. 참전 유공자에게 약값을 지원하는 예산이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금액인가.

한 참전 유공자는 기자에게 “우리들이 불쌍하지 않으냐”고 했다. 한 몸 바쳐 나라를 지킨 분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현실이 안타깝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약값을 지원해달라는 참전 유공자들의 요구가 한낱 노인들의 하소연으로 전락하고 있다. 매년 참전 유공자 2만명이 세상을 떠난다. 현재 남아있는 26만1360명이 대부분 75세 이상이다. 예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