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이준석(36) 국민의힘 대표와 40여분 동안 지하철을 타고 함께 이동했다. 국가 의전(儀典) 서열 8위인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개회식에 참석한 뒤 국회로 출근하려던 참이었다. 행사 취재를 마치고 국회 기자실로 복귀해야 하는 기자와 동선이 같아 동행을 요청하니 그는 선뜻 응했다.

이준석(오른쪽 둘째)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30일 서울 지하철 9호선을 타고 가던 도중 한 승객의 요청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승재 기자

호텔에서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기자는 하나둘씩 걱정이 생겼다. ‘이 대표를 향해 극성 여권 지지자가 돌진하면 어떡하나’ ‘승객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곁에 있어야 하나 피해야 하나….’ 취재를 위해 다양한 장소에서 정치인들을 만나봤지만 대중교통을 같이 타보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혼잡한 출근 시간대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지만 열차 내부에 빈 좌석은 없었다. 이 대표와 수행팀장, 기자는 다른 승객들 틈에 서서 갔는데, 예상과 달리 이 대표에게 관심을 보이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이 대표 역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쉴 틈 없이 정치권 인사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스마트폰으로 당무를 처리했다. 백팩을 멘 이 대표는 여느 승객들처럼 문쪽에 등을 기대 서 있기도 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 국회의사당역까지 가는 동안 이 대표에게 말을 건넨 승객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 2명이 전부였다.

이 대표는 지난달 11일 당대표 당선 이후에도 “운전기사가 있는 전용 차량은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하다”며 지하철과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계속 이용하고 있다. 수행원이 대여섯 명 따라붙어도 어색하지 않을 제1야당 대표가 승객들 틈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가 떠올랐다.

고대 로마에선 개선장군이 시가 행렬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도록 했다. 권력이 영원하지 않으니 교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표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승객들은 각기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광경은 마치 이 대표를 향해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이 대표는 10년 전 정치 입문 때부터 거침없는 말투로 “싸가지 없다” “건방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당대표가 된 이후 그와 함께 일하는 인사들 중에서 그런 평가를 하는 이는 보지 못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제1 야당 당수가 되고도 들뜨지 않는 이유가 지하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날 ALC 개회식은 이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첫 만남 자리로도 화제가 됐다. 현장에서 본 이 대표의 양복 상의 뒷부분은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상계동 자택에서 백팩을 메고 홀로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에도 출입문에 기대 서 있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