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공무원 413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3명 중 1명(33.5%)이 공직을 떠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정부세종청사 전경. /뉴스1

이직하고 싶은 곳으로는 공공기관(35.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민간 기업(18.2%), 창업(18.2%) 순이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했을 관료 생활을 청산하고 다른 인생을 택하고 싶다고 했다. 이 비율은 30대(46.7%)와 20대(44.8%) 순으로 높았다.

젊은 공무원들이 떠나고 싶다고 한다. 작년 퇴직한 공무원 4만4676명 가운데 5년 차 이하가 4명 중 1명꼴인 1만1498명으로, 4년 전(5613명)의 2배가 됐다. 공무원들은 급여보다도 나라 일을 맡아서 하는 자부심으로 버틴다고 했는데 달라진 것이다.

기자가 정부 부처들을 취재하기 시작한 10년 전과는 크게 달라진 공직 사회의 모습이다. 경제 부처의 종가(宗家)라는 기획재정부에서는 “무슨 국의 김 아무개 국장이나 이 아무개 과장 밑에서 일을 배웠다”며 1등 의식을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 아무개나 이 아무개를 만나지 못한 관료들을 2등 취급하는 오만함이 은연 중에 배어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입김이 커지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관료들이 힘을 못 쓰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 정권 교체가 이어지면서 김 아무개와 이 아무개는 차관도 되지 못했다. 1등 관료를 자처했던 이들이 민간으로 떠나갔다. 남아 있는 이들은 진급할 생각이 없고 정년이나 채우겠다고 한다.

최근 대통령실은 교육부 3인자 격인 교육부 차관보(1급)에 기재부 국장을 임명했다. 국립대 사무국장 파견자인 교육부 국장급 2명에게 이 자리를 제안했는데 ‘승진보다는 현재 보직에서 정년을 채우고 싶다’는 취지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고(高)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3고 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리는 시기다. 군대로 비유하자면 전시(戰時)나 다름없는데 병사들은 떠날 궁리를 한다. 지휘를 맡아보겠다는 간부들도 찾기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군인 없이 전쟁할 수 없듯, 관료 없이 나라를 꾸려갈 순 없다.

관료들의 무사안일한 행태에는 경종을 울려야겠지만, 공직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586 운동권 입김에 엎드려 있던 관료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검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어깨에 힘이 빠진다는 말이 나온다.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긍지를 먹고 사는 관료들이 헌신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지는 당당한 모습으로 공직 사회가 부활해야 나라 전체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이 일은 대한민국에서 나만 하니까 내가 책임지고 하겠다”던 예전 관료들의 오만함이 그리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