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청년 정치가 지리멸렬해졌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여야의 간판이 85년생 이준석과 96년생 박지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대선판을 흔든 단문 공약이나 ‘59초 쇼츠’ 영상으로 대표되는 신선함은 사라졌다. 대신 일정한 직업이 없는 청년 정치인을 비꼬는 ‘여의도 2시 청년’ ‘엄마 카드 정치인’ 같은 비아냥만 난무한다. 소수 정당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정의당에서는 비례대표 사퇴를 권고하는 당원 총투표가 시작돼 87년생 장혜영, 92년생 류호정이 의원직을 잃을 수도 있게 됐다.

“30대 장관이 많이 나올 것”이라던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공수표가 된 것은 두고두고 문제를 제기할 일이다. 하지만 청년 정치인들의 최근 언행을 보면 과연 수권(受權) 능력과 리더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묻게 된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져놓고 기성 정치인들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시작과 끝이 언어인데, 그들이 쓰는 말은 막말과 혐오로 점철됐다. 소셜미디어(SNS)를 사랑하는 이준석 대표는 현란한 수사(修辭)와 패러디를 동원해 비판자들을 저격한다. 한때 호형호제하던 김병민 서울 광진갑 당협위원장을 향해서는 “그렇게 빨아주더니 대통령실에 못 가서 어떡하냐”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당장 속은 시원하겠지만 실속은 없다. 오히려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을 막말로 남을 것이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때려라’라고 하는 여의도의 구습도 단골로 등장한다.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은 친이준석계인 김용태 최고위원을 저격하며 “2년 만에 20억원대 재산신고를 해 돈 걱정 없고 현실을 모른다”고 했다. 뜬금없는 재산 폭로는 곧바로 부메랑을 맞았다. 국회 직원들의 커뮤니티에선 과거 장 이사장이 타고 다녔다는 고급 차량이나 그의 학벌을 놓고 온갖 ‘카더라’가 난무한다. 여당 부대변인은 “돈이 없어서 그의 카드가 그립다”고 비꼬았다. 청년들이 두 패로 갈려 서로를 저격하고, 공개 토론을 신청해놓고 ‘급이 안 맞는다’며 이를 무르는 우스꽝스러운 행태도 벌어졌다.

청년 정치가 성공하고 더 많은 청년이 정치에 진출해야 할 당위는 차고 넘친다. 당장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 되는 게 중요한 기성 정치인들은 청년에게 절실한 저출산이나 연금 개혁 같은 과제를 해결할 생각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온갖 구호만 외쳐놓고 허비한 수십년 세월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잠시였지만 2030세대가 여야 대표가 되고, 지난 대선에서 이대남·이대녀가 ‘캐스팅 보터’가 된 것은 청년들의 손으로 청년들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었다. 이런 대의를 생각하면 청년 정치인들이 기성 세대를 답습하는 구닥다리 방식의 반목과 대립을 넘어설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