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막한 아시아 최대 IT 전시회 컴퓨텍스 전시장. 5만여 관람객이 몰린 가운데 가장 줄이 길었던 부스는 인공지능(AI) 기능이 탑재된 노트북 신제품도, 레이싱 모델이 들고 있는 최신 키보드도 아니었다. 바로 엔비디아가 올해 말 출시할 AI 가속기 ‘블랙웰’이 전시된 코너였다. AI 가속기는 주로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기업용 반도체 칩이라 일반인이 쓸 일이 없다. 부스에서 나오는 대만 관람객을 붙잡고 물었다. 그러자 “이제 우리는 AI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가장 중요한 칩을 대만 사람(젠슨 황 엔비디아 CEO)이 설계하고 대만(TSMC)에서 만든다니 뿌듯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기다림 끝에 AI 가속기 앞에 서니 ‘아름다운 블랙웰, 젠슨 황 왔다 감’이라는 그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전시장 중앙에 가장 크게 부스를 연 대만 PC 제조사 에이서·에이수스·MSI 3사도 모두 황 CEO의 친필 사인을 전면 배치했다.

컴퓨텍스 기간 동안 대만은 AI 시대 중심으로 우뚝 섰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만계 인물이 수장으로 있는 빅테크가 AI 칩을 설계하고, 대만 1위 기업인 TSMC가 그 칩을 생산한다. 또한 AI 서버와 AI PC 모두 대만 기업들이 만든다. 대만인들은 황 CEO를 ‘AI 대부’라 부르며 무한한 애정을 퍼붓는다. 그도 “엔비디아가 막 시작할 때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도왔다”며 “대만은 우리의 숨은 영웅”이라고 화답했다.

젠슨 황의 대만 사랑은 립 서비스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현지 기자들과 만나 “5년 내 최소 엔지니어 1000명을 고용할 수 있는 공장 부지를 물색 중”이라고 했다. 왜 대만에 투자하느냐는 물음에는 “기술 생태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반도체 제조·패키징, 컴퓨터 조립 모두 대만 기업이 월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과연 그에게 ‘반도체 강국’ 한국도 고맙고 매력적인 나라일까. 간담회장에서 만난 그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겼다. “삼성전자가 아직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납품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엔비디아 파트너사가 될 수 있나”라고 물었다. 그는 샌드위치를 한참 씹더니 “답하기 어렵지 않은 질문”이라며 “삼성전자의 테스트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훌륭한 메모리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게 ‘AI 반도체 제왕’ 젠슨 황이 보는 한국의 현위치다. 우리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지만,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적어도 수년간 ‘황의 선택’만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반면 대만은 반도체 제조·패키징 1위, 설계 2위 역량을 자랑한다. 그 바쁜 젠슨 황이 2주나 머무르며 ‘대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