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창업 지원 기관 ‘사무라이 인큐베이트’의 멤버들이 일본 전통 무사(武士) ‘사무라이’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무라이 인큐베이트

2020년대 들어 일본에선 창업 생태계가 취약하다는 위기의식이 잇따라 나왔다. 일본 유명 벤처캐피털(VC)인 자프코는 “일본인들의 창업에 대한 인식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며, 창업을 하려 해도 주변에 경험한 지인이 없다”고 지적했고, 일본 주요 매체들은 “실패를 꺼리는 안정지향적 성향이 문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시아권에서 창업 생태계가 비교적 잘 조성된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2020년 당시 일본의 국내 벤처투자액은 약 4조원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한국에선 “창업 영역에선 극일(克日)이 아니라 극중(克中)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랬던 일본이 불과 몇 년 사이 지표들을 빠르게 개선했다. 작년 세계적인 투자 한파 속에서도 일본은 약 6조5000억원의 국내 투자액을 기록했다. 글로벌 창업생태계 평가기관인 ‘스타트업 지놈’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도쿄, 요코하마 등 일본 주요 도시를 언급하며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생태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본 정부는 2022년을 ‘스타트업 창출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해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2027년까지 약 9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100개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먼저 학계에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대학발(発) 스타트업’ 수는 작년 4288개를 기록, 1년 전보다 506곳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발 스타트업은 학생·교직원 등이 창업하거나 대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설립된 벤처기업을 말한다. 기초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실제 일본 전국 각지 대학에선 창업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학교 경진대회 문의와 참가 비중이 늘고 있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변화가 도쿄, 오사카 등 주요 도시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도쿄에서 약 400km 떨어진 도야마현의 대학발 스타트업은 4년 동안 4배나 증가했고, 최북단 홋카이도 역시 활발한 대학 창업이 이뤄진다. 전국적인 저변 확대다.

일본 정부는 당장은 실현이 어려워 보이는 목표를 수년 단위로 설계했고, 각 지역 대학은 학생들이 보수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창업 정보를 공유하는 장(場)을 마련했다. 정부의 계획에 따라 현장에서 반응하는 이러한 풀뿌리 확장 방식은 일본이 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즐겨 사용하곤 한다.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스타트업 현장에선 “여야를 떠나 선출직 인사가 바뀌어도 6~7년은 이어지는 스타트업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많다. 정권이 바뀌어도 믿고 갈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저변 확대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