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바깥 사람이 문지방을 넘어 들어올 때 높은 지지율과 함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경우가 있다. 정치권은 이를 ‘000 현상’이라 불렀다. 젊은 대학교수 안철수가 4년간 부동의 대선 후보 1위 박근혜의 지지율을 넘었던 2011년 9월,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다. 안철수 현상은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들며 위세를 떨쳤다. 김영삼 정부 말기엔 ‘이회창 현상’이 있었다. 대통령과 싸우고 총리직을 던지자 ‘현상’이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엔 ‘고건 현상’이, 박근혜 정부에선 ‘반기문 현상’이 있었다. 고건 전 총리는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다 대선이 열리는 해 결국 불출마 선언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0일간의 짧은 국내 대선 행보 동안 지지율이 흔들리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현상’이란 말에는 국민 누구나 실감하는 사건이라는 뜻과 함께 일시적 허상일 수 있다는 뉘앙스도 담겨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대표, 이재명 지사를 제치고 차기 대선 주자 1위에 올랐다.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의 집중 공격에 버티며 대항한 뒤에 지지율 상승 곡선이 가파르다. 젊은 사람들이 ‘갑질하는 상사에게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느꼈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반(反)문재인 집결” “다 추미애 덕” 등 해석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윤석열 현상’이 당분간 정치권의 최대 화두가 될 것이란 사실이다.

▶검사 윤석열은 노무현 정권 때 실세들을 구속했다. 박근혜 정권 때 권력에 저항하다 좌천됐지만 나중에는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참여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 윤석열을 정치적으로 키운 것은 순전히 여권의 악수 때문이다. 대통령이 ‘우리 권력도 수사하라’고 해서 조국 수사, 울산 선거 공작 수사를 했는데 탄압 받았다. 국감에서 "검찰총장은 법무장관 부하가 아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표현” 등의 말과 함께 권력에 굴하지 않는 ‘사나이’로 등장했다. 제대로 된 대선 주자 없는 야권도 윤석열을 키웠다. 국민의힘은 사라지고 ‘갑질 운동권' 대 ‘당찬 검사’의 대치만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발광(發光) 못하는 정치인은 오래가지 못한다. 윤 총장이 정치권 가시밭길을 걸을 각오가 돼 있는지도 의문이다. 윤 총장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사람이다. 야권에도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현직 검찰총장이다. 현직 총장이 대선 주자 1위가 돼있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무도한 정권 아래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