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1년 우리나라에 홍역 환자 5만여 명이 생기고 7명이 사망하는 대유행이 발생했다. 방법은 백신 접종밖에 없었다. 방역 당국이 인도산 백신을 수입하려 하자 “인도산밖에 없느냐”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2001년 5~7월 전국 초·중·고교생 580만명을 일제 접종하는 속도전이 벌어지자 많은 국민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행히 별 사고 없이 접종을 마무리해 2006년 국가 홍역 퇴치를 선언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단기간에 감염병을 종식한 교과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백신 확보전을 벌인 나라들이 이번엔 백신 접종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가장 빠른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지난달 20일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해 지난 2일까지 전 국민의 13%인 109만명에게 1차 접종을 마쳤다. 최근 하루 접종자가 15만명을 넘을 정도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달 말까지 전 국민의 5분의 1에게 접종을 마칠 계획이다. 세계 최초로 ‘집단 면역'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도 2일까지 24만명 가까이 백신 접종을 마쳤다. 반면 프랑스는 1일까지 516명을 접종하는 데 그쳤다. 지난달 27일 같이 접종을 시작했는데 무려 462배 차가 나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백신 거부 정서가 만연한 데다 느리기로 악명 높은 행정 절차 때문이라고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화가 났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다.
▶접종 속도가 안 나는 것은 미국과 영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코로나 확진자 사망자는 폭발적으로 느는데 백신 보급 속도는 목표의 20%에 그치자 백신 접종량을 절반으로 줄여 접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영국 보건 당국은 1·2차 접종 간격을 최대 12주로 대폭 확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지난달 23일 “더 많은 사람이 1차 접종이라도 할 수 있도록 1월 백신 확보량을 모두 1차 접종으로 활용하자”고 한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원래 화이자·모더나 백신은 3~4주 간격으로 맞도록 설계됐다. 미국과 영국 의사들은 대체로 “검증이 필요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리나라엔 백신 거부 정서가 거의 없다. 2009년 신종 플루 때도 10월 말 백신 접종을 시작해 12월 유행을 잡을 정도였다. 코로나 백신은 2회 접종인 데다 유통도 더 복잡하지만 물량만 확보하면 몇 달 내 접종을 마칠 수 있다. 그런데 백신 확보가 늦어 다른 나라의 백신 속도전과 그에 따른 논란을 그저 지켜보고 있다. 정부 사람들은 이것도 ‘다행’이라고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