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8월 20일 제주 앞바다에 북한 공작선이 출현했다. 북 노동당의 남한 지하조직인 통일혁명당의 당수 김종태·이문규 등을 태우고 가려는 것이었다. 우리 군과 교전 끝에 북 공작원 12명이 사살됐다. 일명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를 비롯한 주범 5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158명이 검거됐다. 김종태는 4차례 북한을 오가며 김일성을 면담하고 거액의 공작금을 받았다. 무장 봉기와 정부 전복을 노리며 신영복·박성준·기세춘 등 학계·문화계 인사와 학생 등을 포섭했다. 통혁당 책임비서였던 신영복, 청년 조직을 이끈 박성준은 각각 무기징역과 15년형을 받았다.
▶신영복 전 교수는 1988년 사상 전향서를 쓰고 20년 만에 출소했다. 하지만 이후 “난 사상을 바꾼다거나 동지를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 강의를 하며 사상서를 출간했다. 자기 고유의 서예체인 ‘신영복체’도 만들었다. 좌파에선 그를 ‘진정한 인문학자’라고 칭송했지만, ‘주체사상 신봉자’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영복을 유달리 좋아했다. 동계올림픽 리셉션에선 펜스 전 미국 부통령과 북한 김영남 위원장을 앞에 두고 “신영복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했다.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땐 신영복의 ‘통(通)’ 글씨와 한반도 그림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통(通·소통)으로 통(統·통일)을 이룬다”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엔 신영복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돌렸다. 대선 구호를 담은 현수막이나 대통령 시계 뒷면에도 신영복 글씨를 넣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 전 교수는 신영복의 학교 후배로 함께 복역했다. 한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 때 박성준의 포섭 대상자로 나온다. 박 전 교수가 문 대통령의 숨은 멘토라는 말도 있다. 문 대통령이 한 전 총리 신원(伸寃)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문 정부 초대 법무장관 후보자였던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는 신영복과 동향으로 친분이 깊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은 2016년 신영복 영결식에서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 통혁당 인맥이 다시 화제가 되는 건 기모란(奇牡丹) 청와대 방역기획관 때문이다. 기씨의 아버지가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기세춘씨다. 조선 성리학자 기대승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는 1997년 북한 주체사상과 동양 철학에 대한 ‘주체철학 노트’라는 책도 냈다. ‘백신 급하지 않다’던 기씨가 발탁된 이유가 뭘까. 이 정부 곳곳에 통혁당 인맥의 흔적이 유난히도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