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소방 공무원 등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26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내과에서 의료진이 사회 필수 인력에게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동작구 제공) /뉴시스

29일 오후 서울 J병원 접종센터에 전화해 보니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지금 와도) 예방접종 받을 수 없습니다”고 했다. 담당자는 “제가 오늘 이런 전화만 100통 넘게 받았다.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방역 당국이 전날 “접종을 예약했다가 무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백신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현장에서 즉석 등록해 접종받도록 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벌어지는 일이다.

▶방역 당국은 28일 브리핑에서 “다른 백신들의 (하반기) 공급이 꽤 늘어날 것이어서 현재 접종하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올까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백신이 턱없이 부족한데 그나마 대부분이 AZ다. 하지만 혈전증 부작용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기피 현상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AZ 접종 예약을 취소하거나 예약 후 오지 않는 ‘노쇼(no-show)’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반기에 화이자·모더나 등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한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AZ 백신 기피를 부추기고 있다.

/만물상 일러스트

▶방역 당국은 연일 당근을 제시하며 접종을 유도하고 있다. 예방접종을 마친 사람은 다음 달 5일부터 해외에서 귀국하거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했더라도 검사 결과 음성이고 증상이 없으면 자가 격리를 면제받는다. 2주 자가 격리를 하지 않으니 해외여행도 생각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예방접종을 마친 경우 요양병원이나 시설에서 가족을 면회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여기에다 노쇼 등으로 남는 백신은 현장에서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접종할 수 있게 했다. AZ 백신은 1병을 개봉하면 10~12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데 개봉하면 6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 현재 백신을 접종하는 위탁의료기관이 2000여개인데 5월 말까지 1만4000여개로 늘릴 예정이다. 각 의료기관에서 1~2명의 예약자만 ‘노쇼’하더라도 산술적으로 1만명 이상에게 맞힐 백신을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현장에 있는 30세 이상 누구나에게나 접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쪽에서는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다른 한쪽에서는 “순서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백신 맞으러 가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언제 어떤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65세 미만에게는 솔깃한 얘기일 수 있다. 일부 병원이나 보건소는 아직 이런 방침을 정확히 몰라 허둥대고 있다. 백신 부족으로 곳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