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20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을 선정하면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표지 인물로 실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 코로나를 가장 잘 극복한 국가로 대만과 뉴질랜드를 꼽았다. 조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 마스크 수출 금지 등 조치와 철저한 방역으로 대만 내 확진자가 한 명도 없는 ‘코로나 청정국가’를 상당 기간 유지했다. 조선일보 만물상도 지난해 말 방역과 경제 두 토끼를 다 잡은 ‘T(타이완)방역’을 소개했다.
▶그런 대만의 코로나 상황이 요즘 180도 달라졌다. 지난달 27일 하루 671명의 코로나 환자가 나왔고 13명이 사망했다. 하루 사망자 수로 역대 최다였다. 급증한 환자로 중환자실 등 병상이 부족해 의료 붕괴를 걱정할 정도다. 요즘에도 하루 500명 안팎의 확진자가 추가로 나오고 있다. 방역 모범 국가에 뒤늦게 코로나 ‘1차 파도’가 덮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백신 접종도 전 세계 최하위권이다. 대만 인구 중 1일까지 코로나 백신을 맞은 사람은 1.94%에 불과하다. 전 세계 평균(22%)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수직 하강하고 있다.
▶백신 접종이 늦은 이유는 ‘T방역’ 성공에 안주해 백신 확보를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체 백신을 개발하겠다며 백신 도입 계약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대만 정부가 6월 안에 들여오겠다고 밝힌 백신은 200만회 분량에 불과하고 대만 제약사들이 자체 개발하는 백신은 일러야 8월 이후 사용 가능해 대만의 백신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백신 도입은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더욱 꼬여 있다. 차이 총통은 지난달 26일 바이오엔테크 백신 구매 계약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중국의 개입으로 최종 계약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중국은 연일 “(시노팜 등) 중국 백신을 받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통일전선을 통한 분열 획책’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야당인 국민당은 이를 수용하자고 주장해 갈등도 커지고 있다.
▶대만이 코로나 방역 모범국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실패 사례국으로 전락한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대만의 사례는 결국 백신과 치료약만이 코로나 사태를 끝내는 근본 해결책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허점을 파고들어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징도 잘 보여준다. 제대로 된 치료약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백신을 맞고 손을 잘 씻으며 버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