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좋고 곡이 아름답다 해서 국민가요 반열에 오르는 건 아니다.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려면 시대와 공감해야 한다. 김민기의 ‘아침이슬’도 그런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1987년 7월, 경찰 최루탄을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의 운구 행렬이 모교를 떠나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인파가 그 뒤를 따라가며 이 노래를 불렀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당시만 해도 애국가 빼면 온 국민이 아는 유일한 노래라 했다. 넥타이 부대, 청바지 차림 학생 할 것 없이 모두 불렀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김민기는 생각했다. “이건 이제 내 노래가 아니구나.”
▶김민기 노래에 담긴 저항적 정서와 1970~80년대의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 탓에 그의 노래에는 민중가요, 저항가요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아침이슬’은 발표 당시 아름다운 가사가 돋보여 서울시문화상까지 받았는데 4년 뒤 이른바 긴급조치로 금지곡이 됐다. 김민기 1집에 함께 수록된 ‘친구’도 그런 곡이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중략)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함께 여행 갔다가 사고로 죽은 친구를 애도한 곡인데 학생들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불렀다. 창작자는 그럴 의도가 없었어도 시대가 그렇게 해석했다.
▶민주화 이후 금지곡의 멍에를 벗은 김민기 노래는 국민 애창곡으로 거듭났다.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1979)는 1998년 대한민국 50주년을 축하하는 공익광고에 배경 음악으로 등장했다. US여자오픈에서 양말 벗고 물에 들어가 스윙하는 박세리 선수와 ‘우리 가는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가사가 IMF로 힘들어하던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아침이슬'이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아침이슬 50년 기념 전시회엔 서울대 미대 졸업 후 자기 이름으로 공식 작품을 발표한 적 없는 김민기의 그림을 볼 수 있다. 후배 가수들은 헌정 앨범을 만들고 축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가수 조영남이 “음대 나온 나는 그림 그리는데 미대 나온 김민기는 노래한다”고 했다. 노래하지 않는 김민기를 상상할 수 없다. 3년 뒤엔 그의 또 다른 역작인 뮤지컬 ‘지하철1호선’도 30주년을 맞는다. 뛰어난 예인(藝人)을 갖는 것은 사회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아침이슬’을 흥얼거리며 젊었던 시절의 추억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