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재판에서 ‘기습 추행’이라는 낯선 용어가 튀어나왔다. 변호인이 “(오씨의 행위는) 충동적, 우발적, 일회성인 기습 추행”이라며 강제 추행 치상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치 총을 정면으로 겨눠 피해자를 공포에 빠뜨린 뒤 쏘면 살인죄가 되지만, 느닷없이 쏴버리면 무죄라는 식이다. 오씨 재판 기사에는 ‘행동도 더럽게 했지만 변호도 더럽게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기습 추행은 법원 판결문에 나오는 용어다. 피해자가 예상할 틈도 없이 불쑥 신체를 만지는 범죄를 뜻한다.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뒤 저지르는 일반 강제 추행과 구분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습 추행도 강제추행죄로 처벌한다.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수치심을 주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기습 추행 판례는 다양하다. 회사 대표가 노래방에서 여직원에게 “힘든 것 있으면 말하라”면서 허벅지를 쓰다듬었다가 유죄가 됐다. 피해자 옷 위로 가슴이나 엉덩이를 더듬는 행위, 교사가 여중생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거나 여학생 귀를 만지는 행위 등도 처벌받았다.
▶오씨는 일과 시간에 집무실로 피해자를 불러 강제 추행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며 자인했다. 그러나 법정에선 기습 추행은 죄가 안 된다며 감형을 노린다. 꼼수는 또 있다. 변호인은 “오씨가 사건 후 치매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뒤 ‘시장직 사퇴는 총선 이후에 한다’며 공증까지 받은 오씨가 치매라는 걸 누가 믿겠나. 변호인은 “(오씨가) 힘없는 노인”이라고도 했다. 오씨는 부산시장 재직 당시 팔굽혀펴기 대회에 나가 138개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때 동영상이 지금도 유튜브에 떠있다.
▶오씨는 재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삶, 반성하고 자숙하며 살겠다”고 했다.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오씨는 눈앞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훗날까지 대비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 그는 작년 영장 실질심사 때 “혐의는 인정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보통 사람 머리에선 나올 수 없는 희한한 말을 했다. ‘혐의를 인정한다’는 말로 구속을 면했다. 동시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자락 깔아두며 재판에서 형량을 낮출 궁리를 했을 것이다.
▶오씨의 혐의는 강제 추행 미수, 강제 추행, 강제 추행 치상 등 성범죄 3단계 세트다.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이달 말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유죄를 선고한다면 오씨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예상하지 못한 ‘기습 판결’은 무효라고 우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