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영화 ‘자산어보’에는 흑산도로 유배 간 정약전이 섬 소년 창대에게 오징어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건 버리는 거냐?” 이런 질문은 대개 그 반대 의미를 드러내려는 의도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오징어의 다양한 쓸모를 나열한다. 지혈제가 대표적이다. 오징어 뼛가루를 상처에 뿌리면 탄산칼슘 성분이 피를 굳게 한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오징어 살은 여성의 월경을 통하게 하고, 오래 먹으면 정(精)을 더해 자식을 낳게 한다”고 했다.
▶현대 들어 고단백·저칼로리인 데다 피로 해소에 좋은 타우린이 쇠고기의 16배나 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정도면 먹는 보약인데 맛까지 일품이다. 자산어보는 “맛이 감미로워 회나 포로 먹기 좋다”고 했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으면 군침이 절로 난다. 이 밖에 국, 찜, 튀김, 무침, 볶음, 순대, 불고기, 덮밥, 심지어 버터구이까지 어떤 방식의 요리법과도 어울린다. 가시가 없어서 생선 싫어하는 사람도 오징어는 즐기는 이가 꽤 된다.
▶문학·영화의 비유로도 애용된다. 신뢰할 수 없는 약속을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 하는데, ‘오징어 먹물로 쓴 약속’이란 뜻이다. 조선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해를 넘기면 먹이 없어지고 빈 종이가 된다. 사람을 간사하게 속이는 자는 이것을 써서 속인다.” 서양에선 두족류(頭足類)인 문어나 오징어 비린내를 시신 냄새와 비슷하다며 기피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유령선 선장 데비 존스가 문어발 수염을 하고 나온 배경이 이것이다. 남자가 치근대면 말린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뽀뽀할래?”라고 하라는 치한 퇴치법도 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처녀 가슴/ 오징어가 풍년이면 시집가요~’ 이씨스터스의 1966년 노래 ‘울릉도 트위스트’다. 1960~70년대만 해도 울릉도는 오징어 산지로 유명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울릉도에 간 지인이 “섬에서 오징어가 자취를 감췄더라”고 했다. 2000년대 들어 동해의 북한 쪽 오징어 어장에 중국 어선이 수백~수천 척씩 몰려가 남획한 탓이다.
▶한동안 씨가 말랐던 오징어가 지난해부터 다시 잡히더니 올해 대풍이라고 한다. 해마다 10월에나 철수하던 중국 어선들이 올해는 어쩐 일로 6월 초에 일찌감치 돌아갔다. 수온도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좋아하는 15~20도를 유지한 덕에 어획량이 평년의 3배다. 20마리 한 상자 가격도 5만~6만원으로 내렸다고 하니 올해는 오징어를 실컷 맛볼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