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나기의 장막은 언제나 우리가 마을 추녀 끝에 몸을 가리기 전에 우리를 덮치고 만다.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복더위와 달음박질로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우리는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박완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묘사한 유년 시절 기억 중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 당시엔 예고 없는 소나기가 일상이었겠지만 첨단 관측 장비로 무장한 채 예보하는 요즘에도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수 일째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지길 반복하고 있다. 지난 27일에도 퇴근할 때 세찬 소나기가 내려 당황했다. 시간당 20~30㎜의 매우 강한 소나기였다. 바람까지 불어 사람이 걷기도 힘들었다. 자동차 와이퍼를 빨리 해도 앞이 잘 안 보이는 수준이었다.
▶기상 전문가들은 요즘 우리나라 대기가 오뚜기가 거꾸로 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북동쪽 5㎞ 상층에 찬 공기가 두 달 가까이 머물러 있다. 위쪽 공기는 차가운데 낮 동안 저층부 기온이 오르면 대기 상태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시로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번개까지 치는 것이다. 이런 소나기 구름은 이동해오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예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아열대 지역 스콜(squall)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스콜은 상층부에 찬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스콜이 내린 후에도 습하고 무더운 상태를 유지하지만, 소나기는 내리고 나면 찬 공기가 내려와 선선해지는 경향이 있다. 스콜은 낮 동안 달궈진 열로 오후 늦게 비가 내리지만 소나기는 시간과 관계없이 요즘처럼 밤에도 내리는 점도 다르다.
▶기상청은 불안정한 날씨가 이어지다 다음 달 2일쯤 제주부터 장마철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기상청은 지난 21일부터 기상항공기(나라호), 기상선박(기상1호), 기상관측 차량 등 육해공 장비를 총동원해 집중 관측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여름철 날씨는 변화무쌍하며 특히 좁은 지역에서 단시간 내에 발달하는 집중호우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작년 여름엔 한 달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내리기도 했다. 기상은 여러 구성 요소가 다른 요소와 계속 상호작용하는 복잡계 과학이긴 해도 기상청이 분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