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유럽인들은 이집트 피라미드와 벽화, 석상, 비석 등에 남아 있는 상형문자를 해독하고 싶어 안달했다. 1799년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 군대가 항구도시 로제타에서 글이 깨알같이 새겨진 돌덩이 하나를 발견했는데, 고대 그리스어와 이집트 민중문자, 상형문자로 같은 내용을 적은 것이었다. 이 기막힌 행운이 고대 이집트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프랑스 언어학자 샹폴리옹이 고대 그리스어를 발판 삼아 상형문자 해독의 비밀을 찾아냈다. 람세스 등 파라오 27명의 이름도 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역사를 다시 쓰게 한 고고학 업적 상당수가 뜻밖의 발견 덕분이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그렇다. 1900년 둔황 막고굴에서 살던 도사 왕위안루와 그의 조수들이 굴을 청소하다가 한 동굴 벽 뒤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벽을 부쉈다. 또 다른 방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옛 문서와 그림 수만점이 쏟아져나왔다. 그중 하나였던 왕오천축국전은 처음엔 중국 승려의 글인 줄 알았는데, 일본인 승려 학자 오타니 고즈이의 연구로 혜초의 신분이 밝혀졌다. 당(唐)에 유학 가 인도까지 다녀온 신라 승려가 1200년 시공을 넘어 우리와 만났다.
▶세계 해저 고고학의 일대 사건으로 꼽히는 신안 유물 발굴도 1975년 여름, 어부의 그물에 걸려 나온 도자기 6점에서 시작됐다. 이듬해 1월 어부의 동생이 형 집에 도자기가 있는 것을 보고 당국에 알린 게 2만4000여점 유물 발굴로 이어졌다. 목간 364개도 함께 나왔다. 그 덕에 종이에 썼다면 흔적 없이 사라졌을 소중한 기록들도 세상에 드러났다. 1323년 중국 닝보를 떠나 일본 하카타로 가던 배였다는 사실, 물품 내역과 수량·상인과 구매자 이름까지 알 수 있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무더기로 출토된 금속활자가 엊그제 공개됐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쓰였던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가 포함돼 있어 15~16세기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명으로 1434년 만들어진 갑인자일 가능성이 있는 한자 활자도 나왔다. 새 건물을 짓기 위해 바닥을 파고 발굴하던 중에 뜻밖의 노다지가 쏟아졌다. 수백년 전 민가 창고였을 수 있다니 무슨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갑인자는 조선 시대 인쇄술의 꽃으로 불리지만 인쇄본만 전할 뿐 활자는 남아 있지 않다. 구텐베르크 성경도 인쇄본만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출토된 한자 활자가 갑인자라면 조선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이자 세계 인쇄사를 다시 써야 할 대단한 발견이다. 후속 연구를 통해 밝힌다니 가슴 졸이며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