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은 원래 패션 용품이 아니었다. ‘풍속의 역사’를 쓴 독일 사학자 에두아르트 푸크스는 하이힐이 분뇨를 피하기 위해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하수 처리 시설이 없는 각 가정에서 창밖으로 버린 분뇨를 밟지 않으려고 만든 신발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 영국에서 수조에 저장한 물을 내려보내는 방식의 수세식 변기가 등장하면서 거리 모습이 달라졌고 하이힐도 지금 같은 용도로 쓰이게 됐다.

일러스트=김도원

▶수세식 화장실 역사는 1만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유적이 발견될 만큼 오래됐다. 우리도 8세기 통일신라의 안압지 인근에서 물로 분뇨를 흘려보내는 수세식 화장실이 출토됐다. 로마 제국 시절 프랑스 남부 도시 비엔에는 겨울철 엉덩이가 시리지 않도록 난방 장치까지 갖춘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다. 하지만 수세식이 수인성 질병 창궐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악화시켰다. 1850년대 영국에서 콜레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사 결과 분뇨를 정화 과정 없이 템스강에 흘려보낸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유럽의 공중 위생은 화장실 위생 개선의 역사다.

▶경복궁에서 150년 전 만들어졌다가 땅에 묻혔던 공중(公衆)화장실 유적이 엊그제 공개됐다. 수세식에다 정화 시설까지 갖췄다. 물 들어오는 곳보다 나가는 곳을 높여 잠시 머물게 하는 방식으로 분변의 자연 발효를 촉진하는 과학적 구조다. 그러나 궁궐 안에서만 누리는 호사였다. 1894년 조선 땅을 밟은 영국인 이저벨라 버드 비숍은 “한양은 세계에서 베이징 다음으로 더러운 도시”라고 했다. 사람들은 거리에 인분을 그냥 버렸다.

▶‘화장실이 불결한 나라’였던 한국은 1988 서울 올림픽과 월드컵을 계기 삼아 화장실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대거 교체했다. 하드웨어 개선에 이어 2002년 월드컵 때는 ‘화장실 청결하게 사용하기'라는 소프트웨어 도약도 이뤘다. 1999년부터 해마다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전 등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며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은 이제 한국 화장실을 보고 감탄한다. 휴대폰을 꺼내 내부를 찍어 갈 정도다.

▶지난해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을 받은 수원 화성행궁 인근 ‘미술관 옆 화장실’은 소지품 선반, 방수 콘센트, 동작 감시 센서와 LED 조명, 여성을 위한 수유실과 영유아 침대까지 갖췄다. 시민들 이용 행태도 선진국 수준이다. 지금도 세계 인구 10명 중 4명이 제대로 된 화장실 없이 질병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지난 세기 중반까지 우리도 그런 나라였다. ‘한강의 기적’이 화장실에서도 이뤄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