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봄 서른세 살 무명 가수 이동원이 시인 정호승을 찾아가 정 시인 작품 ‘이별 노래’에 곡을 붙여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정 시인은 “좋은 곡을 만들어보라”며 허락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해 가을 이동원이 ‘워크맨’에 노래를 담아 정 시인을 다시 찾았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정 시인은 감탄했다. 애절한 곡조 위로 흐르는 이동원의 사색적인 음색에 매료됐다. 이동원은 이 노래로 오랜 무명에서 벗어났다. 연말엔 난생처음 방송사 10대 가수로도 선정됐다. 노래는 이듬해까지 100만 장 넘게 팔렸다.

▶그 후 이동원은 시에 곡을 붙여 꾸준히 발표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라는 고은의 ‘가을 편지’도 이동원 입을 통해 국민 애창곡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동원 최고의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정지용 시에 곡을 붙인 ‘향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당시 서울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와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는 200만 장 넘게 팔렸다. 이동원은 명실상부한 ‘음유시인’이었다. 조선일보가 10여 년 전 ‘현대시 100년 애송시 100편’을 연재했을 때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시가 ‘향수’였다. 그때 “냉장고 벽에 시를 오려 붙이고 노래했다”는 독자 반응이 많았다. 노래가 명시(名詩)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뜻일 것이다.

▶K팝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작곡과 편곡이 단연 세계 최정상급이다. 다만 아름다운 우리 시를 가사로 붙여온 전통의 맥이 끊긴 것 같아 아쉽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송창식의 ‘푸르른 날’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는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도 모두 원작은 시(詩)였다. 서양 팝 음악사의 명곡들도 멜로디 못지않게 아름다운 가사로 사랑받는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 노래가 대표적이다.

▶'나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이별 노래’)라고 했던 가수 이동원이 지난 주말 별이 되어 하늘에 올랐다. 고인은 1년 전 이맘때 병마에 수척해진 얼굴로 정호승 시인을 다시 찾아가 “내 노래는 100년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인의 소망대로 ‘음유시인 이동원’이 우리 곁에, 노래하는 별로 영원히 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