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공소장을 보면, 2017년 7월 25일 취임한 백운규 산업부장관은 8월 2일 내부 회의에서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의 교체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때 이 사장은 임기가 2년 3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넉 달 뒤인 12월 4일 검찰이 이 사장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별건 수사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한 달여 뒤 물러났다. 그가 2017년 10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때 ‘건설 재개’ 지지 입장을 밝혀 정권에 밉보인 게 결정적 문제였을 것이다.
▶2018년 4월 취임한 후임 정재훈 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에 냈던 ‘직무 수행 계획서’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가급적 연내에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적었다. 월성 1호기 폐기를 약속하고 사장이 된 것이다. 정 사장 취임 한 달 뒤 탈원전에 비판적인 사외이사 세 명이 모두 우호 인사들로 교체됐다. 다시 한 달 후 이사회에서 월성 1호기 즉각 폐쇄가 결정됐다.
▶정 사장은 취임 넉 달째부터는 ‘한수원이 원자력을 넘어선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신재생까지 포괄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며 ‘신사업 발굴팀’이란 것도 발족시켰다. 당시 한수원 사명(社名)에서 ‘원자력’을 빼는 걸 검토한다는 소문까지 났다.
▶최근엔 한수원이 세계 최대 수상 태양광을 건설한다고 부산하다. 2018년 10월 정부가 10조원을 들여 새만금에 태양광 등 초대형 재생에너지 단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여기서 1차로 300㎿급 수상 태양광의 주관 사업자로 선정됐고 전체 수상 태양광 설계와 15㎞ 송변전 설비 공사까지 수주했다. 그런데 감사원이 지난 17일 한수원이 설계 업무를 면허가 없는 현대글로벌에 수의 계약으로 맡겼다면서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대글로벌은 수주한 뒤 이를 통째로 면허를 가진 다른 엔지니어링사에 하도급으로 넘겨 손도 안 대고 33억원을 벌었다.
▶정재훈 사장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이 재개됐으면 좋겠다”는 의외의 발언을 했다. 그러더니 최근 한수원은 “원전은 환경 보전에 유리한 초(超)저탄소 에너지원”이라며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해 지원해달라는 입장을 환경부에 전달했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정부 내에서 탈원전을 재고하자는 말들이 나오는 분위기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는다는 말이 있다. 한수원의 변신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