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시절 병장 계급장을 달고 미군 상병을 지휘한 적이 있었다. 군 생활 2년 미만 해놓고 실전 경험까지 있는 5년 차 미군 상병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했다. 미군 상병은 속이 뒤틀렸는지 뜬금없이 ‘너 월급 얼마냐’고 물어왔다. 20여 년 전 한국군 병장 월급이 약 2만원, 미군 상병은 1200달러쯤으로 기억한다. 60배 차이였다. 당시 ‘징병제와 모병제 차이’라고 설명했다. 모병제인 미군은 모두 직업군인이다.
▶2차 대전 후 일찌감치 모병제로 바꾼 영국과 프랑스 병사 초봉이 200만원 남짓이다. 2년 이상 복무한 일본 자위대 부사관도 그쯤 받는다. 전부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들이다. 우리와 1인당 GDP가 비슷한 대만은 2014년 모병제를 본격화하면서 이병 월급을 120만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징병제 국가에선 ‘월 100만원′도 찾기 어렵다. 한국처럼 전쟁 위험에 놓인 이스라엘의 전투병 월급이 50만원 수준이다. 독일도 징병제일 때는 병사 월급이 30만~40만원이었다. 지금 한국군 병장은 월 68만원을 받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그제 “병사 월급 200만원”을 공약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도 “환영한다”며 작년 말 이미 ‘월 200′을 약속했다고 맞섰다. 작년 국방부가 병장 월급을 2026년까지 1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는데 대선 한 번 거치면서 ‘따블’로 뛸 판이다. 미군 2년 차 미만 상병이 2100달러 수준이다. 군 생활 1년에 월 200만원이면 세계 최강군 미군 못지않을 것이다.
▶징병제는 상시적 안보 위기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병역 의무를 지운 것이다. 국방은 대가보다 의무가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병사의 최저임금 보장’은 징병제를 끝내고 모병제로 전환할 때 제기될 문제들이다. 징병제 국가 중에도 태국·이집트는 최저임금의 100%를 지급한다고 하지만 월급 50만원 미만이다. 징병제에서 모병제 전환은 기존 군사·안보 체제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일인데도 진지한 고민이나 토론은 안 보인다. 그저 20대 남성 표 얻을 생각뿐이다.
▶현재 한국군 하사 초봉이 170만원쯤이다. 병장 월급이 200만원이면 부사관과 장교는 얼마를 받아야 하나. 월급을 연쇄적으로 올리려면 1년에 10조원 가까이 더 들 것이란 추산도 있다. F-35A 스텔스 전투기 40대 도입 예산이 8조원이다. 최첨단 사드 1개 포대도 1조원이면 산다. 무엇이 우선돼야 하나. 조금 있으면 후보들이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들고 나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