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endemic)’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거나 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뜻한다. 현재 팬데믹 상태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기나 독감처럼, 대규모 감염을 일으키지 않고 사회의 각 기능이 작동하는 데 차질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로 파괴력이 낮아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류의 관심은 지금 오미크론 변이가 팬데믹의 끝, 그러니까 엔데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하는 점에 쏠려 있다.
▶영국은 요즘 하루 10만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27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백신 패스 등을 중단하기로 했다. 확진자 자가 격리를 규정한 법이 3월 24일 만료하지만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를 독감 같은 엔데믹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보건부 장관은 “독감이 심한 해에는 약 2만명이 사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 전체를 봉쇄하거나 많은 규제를 가하진 않는다”고 했다. 영국의 이런 조치는 12세 이상 인구 대비 64%가 부스터샷까지 맞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국만 아니라 남아공·미국 등에서도 오미크론 변이의 폭발적인 확산세가 한풀 꺾인 듯한 모습을 보이자 코로나가 엔데믹 국면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CNN은 작년 11월 말 오미크론이 출현하면서 세계가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이런 프레임이 다소 바뀌었다고 22일 보도했다. 오미크론의 중증화율이 델타 변이의 3분의 1, 적게는 5분의 1 정도라는 점이 핵심 근거다. 덴마크와 스페인 등도 국가 방역을 엔데믹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 알파벳 순서에서 오미크론 다음은 파이(pi)다. 오미크론이 진정 단계에 진입하더라도 엔데믹으로 갈 수 있는 핵심 전제조건이 있는데 새로운 변이, 즉 파이 변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도 “기존 변이의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또 다른 변이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에만 오미크론이 팬데믹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변이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라는 전제가 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베타·감마·델타 변이가 등장했듯, 아프리카·동남아 등처럼 백신 접종률이 낮은 지역이 남아 있는 한 상당히 파괴력 있는 변이가 등장해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제 오미크론 대확산의 초기에 진입해 엔데믹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