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저명한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104세 생일이던 2018년 4월 4일 “내 삶은 야외 활동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며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구달 박사는 102세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연구실에 갈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었다. 집에서 넘어져 다친 이후로 혼자 거동할 수 없게 되긴 했지만 불치병을 앓던 것도 아니었다. 한 달여 뒤인 2018년 5월 10일, 구달 박사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호주 땅을 떠나 멀리 스위스 바젤에 가서 약물을 투여받고 생을 마감했다.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며 1960~70년대 스크린을 주름잡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건강이 더 나빠지면 안락사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935년생으로 86세인데 자신이 세상 떠날 순간을 정하면 임종을 지켜봐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알랭 들롱은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살고 있다. 2019년 뇌졸중으로 수술받은 뒤 급격히 쇠약해졌다. 전처 나탈리 들롱도 안락사를 희망했지만 프랑스 법이 허용하질 않아 실행에는 못 옮겼고 작년 1월 파리에서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9년 전 파리의 유서 깊은 호텔에서 86세 동갑내기 노부부가 안락사 금지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들을 무슨 권리로 잔인한 상황으로 몰고 가느냐”는 항변이었다. 남편은 경제학자, 아내는 작가이자 교사였던 지식인 부부였다. 60여 년 해로한 이 노부부는 사별해서 혼자 남겨지거나, 거동 못 하는 지경에 이르러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죽음보다 두려워하면서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한다.
▶1975년 미국에서 21세 여성 캐런 앤 퀸런이 술과 약물을 함께 복용한 뒤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부모가 냈고 이듬해 법원이 허락했다. 이를 계기로 ‘인간답게 죽을 권리’라는 개념과 함께 존엄사 논쟁이 촉발됐다.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환자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구달 박사나 알랭 들롱이 선택한 것 같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여전히 극소수다.
▶'100세 시대’를 넘어 곧 ‘12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늘어나는 수명만큼 ‘존엄한 죽음’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