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심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말은 아슬아슬하다. 흑인이 백인 경찰 총에 죽는 것은 반문명적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며 “니거(흑인을 비하하는 표현)가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폭탄 발언도 했다. 백인이 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말을 하고선 “나도 흑인인데 농담이었다”며 빠져나갔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동양인 아이들을 불러내 괴상한 동양식 이름을 붙여 좌중을 웃기려 했다. “내 농담이 불쾌하다면 트위터에 띄워라. 물론 스마트폰도 이 아이들이 만들었다”며 아시아는 아동 노동을 착취한다는 부정적 인상까지 덧씌웠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끔찍한 농담”이란 비난이 들끓어도 못 들은 척했다.
▶그제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가 아내 제이다 핀킷의 삭발한 머리를 조롱한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렸다. 제이다는 영화 ‘콜래트럴’에서 숱 많고 탐스러운 장발을 자랑하던 배우였다. ‘매트릭스’에선 머리를 질끈 동여맨 함장으로 열연했다. 그런데 탈모증을 앓다가 아예 머리를 밀었다. 상실감이 컸을 게 분명한데, 데미 무어가 박박머리 여군으로 나온 ‘GI 제인’ 속편에 출연하라 했으니 농담이라 해도 선을 넘은 것이다.
▶자신의 결점을 의식하는 사람은 그 결점을 잣대 삼아 세상을 본다. 키 작은 사람 눈엔 사람들 키가 보이고, 탈모인 눈엔 머리숱부터 들어온다. 그로 인해 박탈감을 겪는다는 의학 연구도 있다. 많은 탈모인이 우울증을 호소한다고 한다. 이걸 농담 소재 삼는다면 남의 상처를 헤집는 폭력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인종, 신체, 배우자에 대한 농담을 피하라고 경고한다. 몇 해 전 모 대학 동창회에서 누군가 “우리 집사람은 수수해”라고 했다. 한 친구가 “네가 눈이 낮긴 했지”라고 농담했다가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타인 신체의 단점을 농담 소재로 삼는 것도 금기다. 특히 쿨한 척 자기 외모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이른바 ‘셀프 디스’ 농담을 들어도 절대 맞장구치지 말라고 권한다.
▶한국 사회는 언어 폭력에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미국은 물리적 폭행을 더 심각하게 여긴다. 이번 사건 이후 미국인들 생각을 물었더니 “록의 농담이 지나쳤다”는 답보다 “스미스의 행동은 폭행(assault)”이라는 반응이 두 배를 넘었다. 아카데미 측도 스미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태세다. 사태를 유발한 록은 ‘친구를 잃는 것보다 농담할 기회를 잃는 편이 낫다’는 격언을 새겨야 할 것이다. 최고의 영화 축제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한 스미스도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