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콜키스 왕국의 공주 메데이아는 희대의 악녀다. 아버지의 황금 양피를 훔치러 온 이아손에게 반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뒤쫓아 온 동생들을 죽인다. 남편이 코린토스 공주 글라우케와 다시 결혼하자 무서운 복수극을 벌인다. 글라우케를 불태워 죽인 것만도 잔인한데, 자기가 낳은 자녀까지 이아손의 씨라며 모조리 살해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잔인한 어머니가 사악하게 복수했다”고 썼다.

▶악행을 저지르는 데 남녀가 따로 있지 않다. ‘자식을 살해하는 어머니’ 신화도 고대부터 여성에 의한 잔혹 범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파멸적인 여성’이란 뜻의 프랑스어 ‘팜파탈’(femme fatale)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다만, 여성은 모성애를 지녔고 남자보다 완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여성의 강력 범죄는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폭력적 남자 못지않게 ‘위험한 여자’에 대한 두려움은 문학과 영화의 단골 테마다. 영화로도 제작된 스티븐 킹 소설 ‘미저리’는 친절한 미소와 잔인한 폭력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닌 캐릭터를 등장시켜 여성의 스토킹 범죄를 다룬다. ‘나를 찾아줘’ ‘위험한 정사’ ‘원초적 본능’ 같은 흥행 영화에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성이 저지르는 잔혹 범죄 상당수가 보험 관련 범죄다. 일본인 스미다 미요코는 친척과 친구들 재산과 보험금을 노리고 접근하는 수법으로 20년에 걸쳐 연쇄 살인극을 벌였다. 범행 뒤에도 태연히 피해자들 집에서 산 것으로 드러나 세상을 경악케 했다. 한국에선 남편과 시모를 살해한 ‘엄 여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핀으로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남편 얼굴에 뜨거운 기름을 붓거나 복부를 흉기로 찌르는 등 여러 차례 살해 시도 끝에 목적을 달성했다. 재혼한 남편도 같은 수법으로 죽였다. 친정 엄마와 오빠까지 보험금 탈 목적으로 눈을 멀게 했다.

▶김민희가 주연한 영화 ‘화차’는 여성이 저지르는 범죄의 배경으로 가정폭력, 저학력, 경제적 무능 등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겪는 고단한 현실을 드러내 주목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전 남편 시신을 토막 내 바다에 버린 고유정,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남편에게 복어 독을 먹이고 실패하자 물에 빠뜨려 죽게 한 이은해의 범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과 헌신으로 가족을 보살피는 세상 모든 어머니와 아내들을 돌아보며 새삼 고개 숙여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