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광팬인 남자 교사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매년 레드삭스의 162경기를 다 챙겨보느라 연애에 번번이 실패하고, ‘운명의 여자’를 만났는데도 야구 때문에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보다 못한 어린 제자가 묻는다. “선생님은 레드삭스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돌려받은 적이 있나요?”

▶응원하는 야구팀이 부진해도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팬들을 ‘야빠’라 부른다. 미국에선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 팬들이 양대 야빠로 군림하다 각각 86년과 108년을 견뎌 짝사랑을 보답받았다. 일본에선 한신 타이거스 팬들이 유명한 야빠다. 한신은 일본 시리즈를 1985년 단 한 차례 우승했고, 이후 총리가 19명이나 바뀌는 동안 우승이 없는데 팬들은 한결같다. 일본 의학계엔 ‘난치병을 앓는 한신 팬이 우승을 상상하며 재활한 방법’ ‘한신 팬은 패배한 경기를 봐도 심박수가 떨어지는 이유’ 등의 논문이 있다.

▶한국의 야빠는 단연 롯데다. 삼성과 더불어 유이(2)하게 41년 역사를 자랑하는 KBO리그 원년 멤버인데 삼성이 8번이나 우승하는 동안 롯데는 꼴찌를 맴돌아 ‘꼴데’로 불렸다. 정규시즌 1위는 해본 적 없고,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2년이 마지막이다. 현 KBO리그 10개 구단 중 우승을 가장 오래 못해봤다. ‘무적 LG’와 ‘최강 한화’ 팬들도 알아주는 야빠이지만 이들은 각각 1994년, 1999년에 우승해서 롯데 팬보다 설움이 덜하다.

▶야구 팬들은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맞붙는 ‘엘 클라시코’에 견줘 LG와 롯데의 대결을 ‘엘 꼴(찌)라시코’로 부른다. 롯데는 엘 꼴라시코에서 늘 열세였는데 지난 주말 LG와 3연전을 싹쓸이하며 리그 2위를 지켰다. LG전 싹쓸이는 2012년 6월 이후 10년 만이다. 주자가 나가면 병살타를 치고, 투수는 볼넷만 던지고, 수비진은 ‘알까기’를 일삼는 꼴데 야구가 아니라 선발은 호투하고 타자는 타점 뽑고 야수는 호수비를 펼치는 ‘롯데 자2언츠’(요즘 2위라고 붙은 별명)의 야구에 팬들이 “느그가 롯데가?”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전설적인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했다. 과학은 불확실성이 없지만, 예술은 의지와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화가 고야처럼 어둡고 ‘괴이’하던 롯데의 야구가 올봄엔 마티스처럼 밝고 생생하다. 올 시즌 은퇴를 선언한 이대호는 우승 반지를 끼고 팬들과 작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