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취임 닷새째인 주말에 쇼핑을 했다. 매출 규모가 전국 으뜸이라는 한 백화점에 갔다가 종로 전통 시장에 들른 다음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했다. 오후 3시쯤 시작됐는데 기자들도 몰랐다. 사진은 우연히 대통령 일행과 마주친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언론사들에 제공했다. 대통령이 신체 사이즈를 드러내는 신발을 신어보는 장면까지 찍혔다. 새 대통령이 앞으로도 보통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계속 보여줄지 관심이 갔다.
▶사실 앞선 대통령들도 물리도록 비슷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는 명절을 앞두고 전통 시장을 찾았다. 차례상 제수용품을 샀는데 때론 29만원어치라고 액수까지 공개됐다. 아내가 현금을 꺼내 결제하면 남편은 물건을 들고 곁에 서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9월까지 네 차례나 수도권 전통 시장을 방문했다. 대구 서문시장, 구미 시장도 자주 들렀다. 지지율이 흔들릴 때 힘 얻으러 간다고들 했다. 과거 대통령 때는 비서실이 이런 장면을 찍어 언론에 홍보 자료로 돌렸지만, 윤 대통령은 비공개로 했다는 점이 달랐다.
▶오바마는 현직 대통령 때 바이든 부통령과 햄버거 가게에서 6달러 95센트짜리 점심을 사 먹은 적이 있다. 색깔 치즈를 얹은 스위스 치즈버거, 할라피뇨 고추, 머시룸 버거, 매운 겨자를 주문했다. 오바마는 5달러를 팁 박스에 넣었다. 이날 오바마의 ‘보통 사람 점심’에는 차량 20여 대가 주변 길을 통제하며 함께 움직였다. 프랑스 외무장관이 샹젤리제 거리의 노천 카페에서 회담을 하는 장면도 봤는데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장 보는 모습은 많이 다르다. 베를린의 한 수퍼마켓은 그녀가 수십 년 전부터 매주 들르는 단골 가게다. 퇴근 후 수퍼 앞에 총리 승용차가 서면 단발머리 메르켈이 구겨진 장바구니를 들고 뒷좌석에서 내렸다. 직접 1유로 동전을 넣어 카트를 꺼냈고, 평범한 물건을 구입했다. 양배추 껍질을 떼어내고, 루콜라가 싱싱한지 살폈다. 종이에 적어온 쇼핑 목록을 꺼내봤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베를린 시민들은 메르켈의 장보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지만 우리 대통령의 주말 나들이는 보통스럽기 어렵다. 사람이 몰려오고 사진도 찍는다. 좀 소란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벤트는 하지 않겠다”면서 시장에 안 갔다. 대통령의 쇼핑 외출은 대개 선발대가 동선을 살피고, 사람이 붐비는 시각, 우호적인 상인을 고른다. 시장에 가면 사랑받고 있다는 환각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이런 대통령 모습은 얼마만큼 진정한 것일까. 결국 국정 운영의 성과로 평가받을 것 같다.
/김광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