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영면한 최명재 민족사관고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1989년 9월인데, 최 이사장이 설립한 파스퇴르유업이 소비자보호원을 상대로 ‘공부 더 하십시오’라는 등의 공격 광고를 내던 때였다. 검은 바탕에 특호(特号) 이상 활자를 쓴 시리즈 광고였다. 파스퇴르 우유가 기존 우유와 질적으로 차이 없다는 소보원 발표를 겨냥한 것이다. 파스퇴르는 우유 업계의 이단아였다. 저온살균법을 들고나와 기존 우유 업계를 향해 난사했다. ‘고름 우유’라는 표현까지 썼다. 광고가 너무 심하지 않으냐는 비판 기사를 썼더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긴장해서 어느 찻집에서 만났는데 의외로 싹싹했다. “젊은 기자가 열심히 한다”는 취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나중 어느 인터뷰에서 “전투에는 져도 전쟁엔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고소, 소송 등에서 져도 분쟁을 이어가는 동안 소비자 뇌리엔 ‘파스퇴르 우유’가 새겨진다는 뜻이었다. 언론의 비판도 ‘노이즈 마케팅’에 도움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996년 강원도 횡성에 민족사관(史觀)고를 세웠다. 원래 생각한 학교 이름은 ‘민족주체고’였다는 것이 한만위 민사고 교장 설명이다.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것 때문에 포기했다. 1927년생인 최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순신 장군 소설을 읽고는 민족 주체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교복으로 개량 한복을 입게 하고, 학교에 99칸 한옥을 복원시켰다. “똑똑한 이완용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평소 말해왔다고 한다.
▶최 이사장은 “창의적인 천재 한 명이 수백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영재교육의 취지를 설명해왔다. 자신은 장사꾼인데, 교육이야 말로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그가 38만평 부지에 민사고를 짓고 운영하는 데 들인 돈은 1000억원쯤 된다. 민사고는 매 학기 개설 강좌가 200개를 넘는다. 학생들이 교사들 각자의 방으로 찾아가 수업을 듣는데, 학생마다 시간표가 다 다르다. 국내 대학보다는 외국 명문대 입학을 의식한 교육이다.
▶최 이사장이 2004년 낸 자서전은 ‘20년 후 너희들이 말하라’는 제목이다. 1회 졸업생이 졸업한 지 23년 됐다. 졸업생들 가운데 벤처기업을 하는 경우가 2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민사고를 두고는 ‘귀족 학교’ 등의 논란이 있어왔다. 민사고 졸업생들이 각자 자기 성공만 찾아가는 게 아니라, 각 분야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다면 귀족 학교 시비는 저절로 잦아들 것이다.